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

2010.11.06 09:17 Tags » if nobody speaks of remarkable things, John McGregor, 글읽기,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 독서, 소설, 존 맥그리거, 토요일아침

"요즘 받은 이메일은 모두, 미안, 많이 바빴어 하고 시작하는데, 우리가 정말 그렇게 바쁜 건지,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서로 할 말이 없는지 모르겠다." 

-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 If nobody speaks of remarkable things, 존 맥그리거 


오랜만에 집어든 소설책. 참으로 오랜만이라 서술형태며 글의 양식조차 어색하게 느껴지는. 생각해보면 나는 요즘 참 많이 읽는데, 읽기 능력 자체는 성큼성큼 퇴보중이지 싶다. 맙소사. 



더크 젠틀리 시리즈

2010.08.29 09:17 Tags » 더글라스 아담스, 더크 젠틀리 시리즈,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 사무소, 리뷰, 소설, 영혼의 길고 암울한 티타임,
더크젠틀리의성스러운탐정사무소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SF소설
지은이 더글러스 애덤스 (이덴슬리벨, 2009년)
상세보기

영혼의길고암울한티타임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더글러스 애덤스 (이덴슬리벨, 2010년)
상세보기


알고 산 건 절대 아니고, 올해 초부터 봐야지 했던 책인데 이래저래하다보니 여기까지 들고 와서 읽어 보니 주구장창 나오는 동네가 내가 사는 동네다. 꾸역꾸역 막히는 펜톤빌 로드라든가, 차고 넘치는 부동산중개업소에 관한 얘기라든가.. 내가 종종 지나다니는 공원 얘기도 나오고, 그래서 의외의 재미가 있었다는 거 빼곤 그다지 장점이 보이지 않던 책. 시리즈 두 번째, 영혼의 길고 암울한 티타임이라는 책은 번역된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첫번째 시리즈가 실망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읽었는데 이거 원.  비슷한 분위기에 삶에 지친 북구신들이 나오는 작품으로 닐 게이먼의 <신들의 전쟁>이 떠올랐다. 물론 결국 하고자 하는 얘긴 매우 다르지만. 소소한 재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굳이 남들에게 빌려주고 싶은 책은 아니랄까. <마지막 기회>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빌려주고 사기를 권했는지를 생각해보면 더더욱. 


Michael Connelly

2010.02.07 16:29 Tags » Brass Verdict, Harry Bosch, Michael Connelly, Nine Dragons, 리뷰,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마이클 코널리, 미국식 영웅주의와 미국식 가족주의 중 더욱 밥맛인 것은?, 미키 할러, 소설, , 해리 보쉬, 해리 보쉬 시리즈


도착한 이래로 소설을 두 권 읽었는데 두 권 모두 마이클 코널리의 작품이었다. 처음 건 미키 할러가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이래로 다시 주인공으로 등장한 Brass Verdict, 두번 째 건 해리 보쉬 시리즈인 Nine Dragons. 이제 Scarecrow인가 하는 작품만 보면 출판된 작품은 다 읽는 셈인데, 마지막 건 볼까 말까 좀 고민스럽다. Nine Dragons에서, the man with plan and mission이었던 해리 보쉬가 미국적 가족주의에 흠뻑 빠져 영화 taken의 주인공 마냥 날뛰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아 세상에 가족적인 필립 말로우가 상상이나 되냐구요) 해리 보쉬 내부에서 무언가가 바뀌었다는 설정은 알겠는데, 어두컴컴한 터널안에서 헤매다 오직 한 개의 빛(미션)만을 쫓는 캐릭터였던 해리 보쉬가 딸한테 절절매는 아버지로 변모하는 건 너무 진폭이 커서 받아들이기 힘들고, 게다가 방식이 너무 미국적-할리우드적이어서 실소가 절로 나오고. Brass Verdict 쪽이 조금 나은데, 이전 작의 희생을 바탕으로 happily ever after로 성공적인 삶을 영위했었을 것만 같은 미키 할러가 또다시 인생을 말아먹었다는 게 조금 현실적인 부분이라 설정이 마음에 들었고, 은근슬쩍 엿보이는 소시민적 정의감도 마음에 들고. 아무튼, 해리 보쉬 실망이에요 코널리 아저씨. 이제 어쩔껀가요.

++ 티스토리 글쓰는 중에(10분도 안됐는데) 자꾸 로그인이 풀려서 못써먹겠음. 뭐 방법 없나요.

  1. acala 2010.02.12 03:54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메모장에 쓰고나서 붙여...

    • BlogIcon Munity 2010.02.19 21:02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그러고 보면 확실히 메모장에 글을 써서 올리던 시절이 있기도 했죠. 그치만 티스토리가 천리안은 아니잖아!

해리 보쉬 시리즈 by Michael Connelly (2)

2009.06.08 16:05 Tags » City of Bones, Crime Novel, Harry Bosch, Michael Connelly, Tennel rat, The Black Echo, Trunk Music, Whatthebook, 독서, 마이클 코넬리, 범죄소설, 소설, 왓더북, , 해리 보쉬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이클 코널리는 굉장히 부지런한 타입의 작가라 1년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신간을 발표하곤 한다. 그건 여전히 내가 읽을 거리가 많이 남아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다음 책을 기다리려면 적어도 1년은 걸린다는 뜻이기도 하고. 아직까지는 읽을 게 남아 있으니 다행인 쪽일까.

해리 보쉬의 유년기를 직접 다뤘던 <The Last Coyote> 이후 내가 고른 건 <The City of Bones>.
 


2002년도에 출간한 작품이니까 시기적으로는 <The Narrows>에서 은퇴 후 복귀를 가늠하던 해리 보쉬가 복귀를 선택한 후 맡은 사건을 다룬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겠다. 20년도 더 전에 죽은 12살 소년의 뼈가 로스엔젤레스의 여느 동네 어귀에서 발견되고, 해리는 Everybody counts, or Nobody Counts 원칙에 입각해서 20년 전 사건의 진실을 쫓는다. 12년 간 학대받은 역사가 그대로 쓰여있는 그 소년의 뼈는 어두운 가족사를 드러내고.. 해리는 이 시대엔 영웅의 아이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초짜 경찰, 줄리아 브래셔를 만난다.

우리나라에도 산자락 어드메 조용히 묻혀있는 뼈들이 그렇게 많다는데. 생각해보면 연쇄살인범 얘기로 온 나라가 떠들썩해질 때마다 그 살인범들은 현장 검증하러 우리나라에 그렇게 많고도 많은 동네 뒷산에 오르곤 한다. 그들이 여기요 저기요 짚으면 어김없이 산자락에 숨겨져있던 시체가 나타나고.. 대부분은 묻힌 지 오래되어 뼈만 남아있고. 웬지 섬뜩한 이야기.




이건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는 내용이다. 1997년 출간. 마지막 부분에서 해리가 결혼을 결정하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엘레노어 위시는 이미 전 시리즈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했던 인물이다. 해리와 상당히 깊은 관계였고 언제나 그렇듯 한 사건을 해결할 무렵 파경에 이르렀던 관계. 해리는 엘레노어에게 연민을 느끼는 동시에 본인이 평생을 지고 갈 거라 생각했던 외로움을 엘레노어와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결혼을 청한다.

<Trunk Music>에서 다루는 건 트렁크 속에서 머리에 총 맞은 채 발견된 시체 한 구에 얽힌 에피소드. LAPD 내의 권력 다툼, 라스베가스의 조직폭력배, FBI의 언더 활동 요원, 피해자의 난잡한 사생활, 거기다 엘레노어까지 얽히면서 꼬일대로 꼬였다가 결국 마무리는 하와이 신혼여행으로. 뭔가 우리나라 주말극 수준의 번잡함을 자랑하는 내용이다. 재미는 있는 편. 그러나 여기서 등장하는 해리 보쉬는 본능적 충동과 과거의 후회가 뒤범벅된 중년의 위기를 겪는 중이라.. 시리즈를 연대기순으로 본 게 아니라 나처럼 드문드문 읽은 독자에겐 좀 의외로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이게 지금 거의 다 읽은 <The Black Echo>. 해리 보쉬와 엘레노어 위시는 어떻게 만났는가. 이전까지 읽은 책에서 굉장히 자주 언급되었던 해리의 군대 생활, 베트남에서의 Tennel rat 시절을 본격적으로 다루며 FBI 수사관인 엘레노어 위시와 함께 1년 전에 발생한 은행강도 건을 수사한다. 재밌는 건 이게 1992년에 제일 처음 출간된 해리 보쉬 소설인데 이미 이 소설 안에서 해리 보쉬는 Dollmaker라고 지칭되는 연쇄살인범 수사를 담당하다 한 달간 서스펜션을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서술된다는 점이다. Dollmaker 사건을 다룬 책은 오히려 이후에 출간되었지만(<The Concrete Blonde>, 1994년 작품).

해리 보쉬에게는 어머니의 사망과 베트남에서의 Tennel rat시절이 유년기와 청년기를 관통하는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시리즈를 다 본 게 아니니 아직까지는 추정) 제법 흥미로운 작품이다. 초반에 마이클 코널리가 해리 보쉬의 성격을 어떻게 설정해두었는지도 볼 수 있고.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캐릭터의 변화도 가늠해볼 수 있고. 시리즈 안에선 여러 모로 의미 깊은 작품. 게다가 해리의 Tennel rat 시절 경험은 이후 작품에서 여러 변주를 통해 계속 등장하기 때문에 <The Black Echo>는 일종의 원형으로써도 주목할 만 하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일단 여기까지가 내가 읽은 해리 보쉬 시리즈 작품들. 몇 권 더 구입해두었고, 앞으로는 가능한 출간 순서를 따라가며 읽을 계획이다. 그러나 <The Concrete Blonde(1994)>는 <The Black Echo> 이전의 사건을 다루고 있으니까 일단 먼저 읽어 놓고, 그 다음에 <The Black Ice(1993)>, 기타 등등.

요즘은
Whatthebook 이 있어서 참 행복하다.

* Tennel rat이 궁금하시다면.
->
위키 링크


 

'보고들은것 > 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크 젠틀리 시리즈  (0) 2010.08.29
Michael Connelly  (2) 2010.02.07
해리 보쉬 시리즈 by Michael Connelly (2)  (4) 2009.06.08
해리 보쉬 시리즈 by Michael Connelly (1)  (0) 2009.06.08
케빈 브록마이어, 로라, 시티  (2) 2008.11.10
미야베 미유키, 외딴집  (0) 2008.11.09
  1. BlogIcon syz 2009.06.08 16:14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오늘은 접속할때마다 뭔가 조금씩 바뀌어있다...! 글이 갱신되거나, 스킨이 바뀌어 있거나. +_+ 좋은 날이고나.

  2. Acala 2009.06.09 08:31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여어.

해리 보쉬 시리즈 by Michael Connelly (1)

2009.06.08 07:33 Tags » Crime Novel, Echo Park, Harry Bosch, Michael Connelly, The Last Coyote, The Narrows, The Overlook, 독서,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마이클 코넬리, 범죄소설, 소설, 시인:자살노트를 쓰는 살인자, , 해리 보쉬

우리나라에 현재 판매 중인 해리 보쉬 시리즈는 없다. 지금도 여전히 어느 도서관 서가 구석에서 잠자고 있을, 예전에 출판된 <The Black Echo>, <The Black Ice>는 이미 절판되어 서점에서 구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마이클 코널리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건 번외편으로 출간된 <시인>과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덕분.

시인: 자살 노트를 쓰는 살인자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마이클 코넬리 (랜덤하우스코리아, 2009년)
상세보기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마이클 코넬리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년)
상세보기

앞서 언급했다시피 우리나라에 출간된 그의 책 두 권에는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LAPD의 해리 보쉬 형사가 언급되지 않는다.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직접 말한 것과 같이, 대부분의 독자들은 여러 권 출판된 시리즈 소설의 새 책 한 권을 뜬금없이 집어드는 것 보다(이전에 출간된 책과 관련된 주인공의 히스토리가 신경쓰여서-사실은 알거나 모르거나 큰 상관없는 경우가 많지만) 잘 알려진 작가의 새 주인공이 등장하는, 완결된 장편소설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판매율은 해리 보쉬 신작보다 <시인>같은 번외편의 판매율이 높다.

그러나 나는 이렇거나 저렇거나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주의의 독자이기 때문에, 그냥 아무거나 우선 읽기 시작했다. 게다가 우리나라가 뭐 이런 시리즈 물 원서를 연대순에 맞춰 구해서 읽기 매우 좋은 환경인 것도 아니고. 그냥 맘 편하게 구하기 쉬운 것부터 읽는 게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처음 집어든 건 2007년에 출간된 <The Overlook>

The Overlook
카테고리 문학/소설
지은이 Connelly, Michael (GrandCentral, 2008년)
상세보기

운 좋게도 이 책엔 한국 독자들에게 익숙한 이름이 등장한다. 레이첼 월링 요원. 연대순으로 따지자면 <시인>으로부터 한 10여 년 쯤 지난 후의 이야기. 멀홀랜드 오버룩에서 자동차 한 대와 머리에 총을 맞은 시체가 발견되고, 미국의 안보 과민증으로 꼬여가던 사건이 해리 보쉬의 본능적인 사건 판단능력으로 풀려나간다는 스토리. 이야기 자체는 살짝 뻔하고 서스펜스도 느슨하지만 이 책엔 레이첼 월링과 해리 보쉬에게 어떤 히스토리가 있다는 점이 <Echo Park>라는 키워드를 통해 굉장히 자주 언급된다. 그래서 궁금해진 나머지 <Echo Park>를 다음 편으로 선택해서 읽었다. 

(여기서부터는 티스토리의 책 정보에서 검색되지 않는 탓에
마이클 코넬리 공식 홈페이지를 참조)


 
아 물론 프렌치 버전으로 읽은 건 아니고, <Echo Park>는 <The Overlook>의 실망을 충분히 만회할 정도로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해리 보쉬의 캐릭터가 매우 확실하게 드러나고(장점 뿐 아니라 단점도) 보완재적 성격을 지닌 레이첼 월링도 등장한다. 그런데 이게 전형적인 파트너십 관계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성격적인 부분에서 틀림없는 공통점을 지닌 두 캐릭터가 행동양식을 결정하는 부분에서 갈등하고, 그 부분에서 서로가 매우 다르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는 점에서 보기에 꽤 즐거운 편이다. <Echo Park>에서 다루는 사건의 범인과 해리 보쉬의 과거가 평행선을 긋듯 겹치면서 언뜻 해리 보쉬가 수직적으로도 굉장히 풍부한 캐릭터라는 것도 알게 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을 지닌 범죄소설 주인공이라니. 이러면 더 찾아볼 수 밖에 없다.





레이첼 월링과 해리 보쉬가 등장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게 <시인:자살노트를 쓰는 살인자>의 후속편인 줄은 몰랐다. 뭐 나름 운 좋게 연대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 해리 보쉬는 아주 예전에 알았던 전 FBI요원의 죽음을 개인적으로 조사하고, 레이첼 월링은 죽은 듯 잠잠하게 숨어 있다가 또 다른 연쇄살인으로 등장한 <시인>의 범인을 쫓는 중에 필연적으로 조우한다. 시간을 거슬러 다시 만난 해리 보쉬에겐 내가 몰랐던 또 다른 과거가 있고, 이쯤 되서 나는 아, 이래서 사람들이 시리즈물 중간에 끼어들어 아무거나 읽는 건 꺼리는구나 깨닫게 된다. 하하. 그래도 이렇게 읽는 것이 여전히 괜찮은 건 작가가 충분히 조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시리즈물에 끼어든 새 독자들이 주인공의 과거에 맞부딪혔을 때 교통사고를 당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현재 진형형인 사건과 관계가 있는 과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언급되고, 나머지는 캐릭터의 그림자로 존재한다. 희미하게, 존재를 지우지 못할 정도로만, 조용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과거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여전하다.





<The Last Coyote>는 아예 그의 과거를 마주보는 에피소드. 해리 보쉬의 유년기와, 갑작스런 그의 어머니의 사망, 그 이후 해리의 삶의 궤적이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이번에 그가 조사하는 건 어머니의 죽음. 경찰이 된 이후 한 두어 번 어머니의 사건 파일을 찾아본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그 사건을 마주보고 그의 과거에 묻힌 이야기를 찾아 헤맬 용기가 없었던 해리 보쉬가 상관과의 충돌로 자격 정지 및 정신과 전문의와의 상담 명령을 받는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조사에 나서는 이야기. 자격이 없는 상태에서의 비공식적인 조사이기 때문에 물론 파트너도 없이, 여느 때보다 더 홀로, 모나게, 수사 범위 안에 있는 모든 것에 온몸으로 맞부딪치는 해리 보쉬를 볼 수 있다. 그가 조사하는 것은 그의 어머니의 과거지만 실제로는 그의 과거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날 수록 해리는 그동안 그가 그 모든 걸 덮어두었다는 걸 깨달으며 줄곧 되뇌인다. Everybody Counts, or Nobody Counts. 사족이지만, 사건의 시대적 배경이나 분위기가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언제나 너무 쉽게 모든 것과 비견되곤 하는, 애꿎은 필립 말로우가 다시 한번 생각나는 책이기도 하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아. 역시 많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엔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시리즈 몇 권과 해리 보쉬 캐릭터 자체를 다뤄볼 기회를... (과연 언제)




  



케빈 브록마이어, 로라, 시티

2008.11.10 02:49 Tags » 로라 시티, 세상의 종말, 소설, , 케빈 브록마이어

로라, 시티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케빈 브록마이어 (마음산책, 2008년)
상세보기


세상은 또 종말로 치닫고 있다. 이거 원, 내가 이런 걸 굳이 찾아 다니는 것도 아닌데 손에 잡히는 게 온통 이렇다. 폐허로 변한 세상 컨셉을 어디서부터 봤더라. <나는 전설이다>부터였던가. 이젠 살짝 물린다 싶은데. <로라, 시티>에서 세상이 텅텅 비어가는 건 바이러스 때문이다. 최근에 읽고 있는 <거짓된 진실>에서 지구가 살아남으려면 인간이 멸종하는 수 밖에 없다는 취지의 문장을 읽은 적이 있는데 오호라, 딱 맞는 상황이다. 치사율 백퍼센트에 전염성도 높은 질병으로 모두가 다 죽는다. 그런데 죽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나. 그들은 아직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의 기억에 의존해서 잠시, 생을 이어간다. 아직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만 머물 수 있는 '시티'에서. 그러니 살아남은 사람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시티에 존재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도 줄어드는 게 당연하다. 그것도 기하급수적으로. 어느새 지구에는 남극에 코카콜라 사의 이벤트성 연구팀 일원으로 갔다가 조난 위기에 처한-이것도 결국 사람들이 다 죽었기 때문이다- 여자, 로라만이 남게 되고 '시티'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다 사라지고 로라의 서른 몇 짧은 인생을 스쳐지나간, 로라의 기억에 흔적을 남긴 사람들만이 남는다.

설정은 꽤나 즐겁다. 칭찬부터 하자면 문체도 아름다운 편이고 시티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 사람들이 자신의 원래 인생에서 놓치고 말았던 '어떤 것'을 되찾아가는 두 번째 삶을 영위할 기회를 갖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시티'의 주민들이 그 기회를 이용해서 두 번째 삶을 꽤나 행복하게 꾸려나가는 반면 홀로 남은 로라는 미래가 보이지 않아,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는 과거를 자꾸 돌아보는 수 밖에 없다. 그녀가 남극에 홀로 남겨지기까지의 과거. 그녀가 행복했거나 그렇지 않았거나 이제는 그 누구와도 이야기조차 나눠볼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홀로 단어연상게임이나 하며 잠들고, 일어나 식사를 하고, 다시 잠든다. 그리고 체념한다. 애써봤지만 별 수 없었다. 영원히는 아니지만, 오래 걸리기는 했다고 혼잣말하며.

그러나 로라가 그렇게 발버둥치며 어떻게든 해보려고, 어디로든 가서, 누구라도 찾아내겠다고 애쓰는 동안 로라의 기억 덕에 '시티'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너무 평화롭고 안온하다. 살면서 결국 찾아내지 못했던 행복을 새로이 발견하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알 수가 없어 삐걱거리고 덜컹거렸던 인생을 구원해줄 해답, 비슷한 것을 찾아내기도 하고. 로라가 영원히는 아니지만, 오래 걸리기는 했던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 괴롭게(춥게-꼭 남극이라 그런 건 아니다) 걸어가는 동안에도 줄곧. 그래서 그들이 영위하는 두 번째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옆 사람의 손을 꼭 잡고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상황은 납득이 잘 안된다. 도대체 얼마나 행복하면, 얼마나 만족스럽게 깨달음을 얻으면 이젠 됐다고, 놓을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걸까. 행복한데, 그게 가능해? 로라와 비슷하게 체념하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아아, 결국 내려놓아야 평안해질 수 있다는 걸까.

책의 마무리는 꽤 괜찮은 편이다. 로라의 의식-환상을 쫓아가는 문장의 묘사력도 괜찮고. 조금씩 줄어들어가는 '시티'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심상을 전하는 것도. 점점 차올라 넘칠 것만 같던 거품이 아직 다 사그러들었다는 느낌이 들기 전에 마무리를 짓는 점이 아쉽기는 해도 이만하면 괜찮다. 워너 브라더스에서 판권을 샀다는데, 영화로도 잘만 만들면 아카데미 타입의 수작이 될 법한 작품이다. 하긴, 어디 잘 만들란 법이 있어야지.




  1. Acala 2008.11.11 08:45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히스토리언도 판권을 사는 세상인데 뭘...

    • BlogIcon Munity 2008.11.12 01:19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히스토리언!! 딱 보면 답이 안나오나..;
      그치만 로라, 시티는 히스토리언이랑 비교하면 억울하다 할걸요. 나름 괜찮은 데가 있어요.

미야베 미유키, 외딴집

2008.11.09 14:34 Tags » 미야베 미유키, 소설, 외딴집,

외딴집(상)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미야베 미유키 (북스피어, 2007년)
상세보기

외딴집(하)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미야베 미유키 (북스피어, 2007년)
상세보기


그 유명한 미야베 미유키 작품을 하나도 제대로 읽은 게 없다. 도서관에 들렀을 때도 몇 번씩 책을 집었다가 놓았고 살 책 목록에 몇 권 들어가있기도 했지만 결국 장바구니엔 넣질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이게 처음으로 읽은 작품이다. 책이 처음 배달되어 왔을 땐 꽤 두툼하게(각 권 450페이지 가량) 분량으로만 치면 최근 출판사들이 책 내는 습관을 감안해봤을 때 적어도 세 권, 느긋하게 네 권쯤은 너끈하지 않을까 싶어서 딱 2권으로 묶어 출간한 출판사의 결정이 의외다 싶었는데, 읽고 나서 돌아보니 이야기의 흐름이나 호흡을 고려해서 애매하게 잘라 권 수를 늘리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은 게 장하다고 느껴진다.

배경은 에도 시대, 무대는 바다에 인접한 작은 지방. 무대가 되는 도시의 구조 자체가 이야기의 갈등을 끌어가는 매개 중 하나라서 사뭇 섬세하게 묘사해낸다. 작가의 설명을 잘 따라가다 보면 굳이 첫 장에 그려준 지도를 보지 않아도 스스로 머릿속에 무대가 되는 마루미 번의 지도 쯤은 그려낼 수 있고. 작가가 이용하는 건 도시의 구조만이 아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기후와 날씨를 끌어들여 이야기의 전개 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감정과 소설 전체의 분위기까지 통제하고 있다. 환경묘사에 들이는 공만큼이나 아주 미미한 역할을 하는 등장인물의 캐릭터 하나하나 공들여 만든 티가 나서 잠깐 등장한 캐릭터의 한 마디 대사로도 그 인물의 캐릭터, 사건의 전개와 분위기를 쉽게 읽어낼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

외딴집은 물샐틈 없이 단단하게 고착되어 있는 계층구조 안에서 누구도 모르게(그렇지만 결국 누군가는 알게 되는) 비밀스런 계략들이 얼기설기 거미줄처럼 뻗어나가 결국 그 구조물 자체를 흔들고 마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중심의 사건은 먹이사슬의 최하층,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선한 여자아이 하나와 성실하고 정직한 처녀애 하나의 인생도 흔들어놓게 되고. 앞서 이야기했듯 그 둘을 스쳐가는 사람들이 상당히 입체적으로 존재한다. 재미있는 점은 답답하게 억눌린 에도시대를 그린 이 소설에서 읽어낼 수 있는 부조리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의 그림자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는 거. 그러나 사람 사는 거 별다를 게 있겠느냐는 통속적인 관점 수준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의 시대를 구성하고 움직이는 욕망의 방향을 집어내서 섬세하게 펼쳐놓아 분명한 설득력을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표지가 소설과 썩 잘 어울린다. 책을 읽으면 캐릭터의 인상이나 사건의 장면장면들이 은은하게 빛 바랜 옛 그림처럼 그려지는 느낌도 좋고. 이만큼 성실하게 묘사해놓고 구백 페이지라니, 살짝 부족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술술 잘 읽힌다. 워낙 출간된 작품이 많긴 하던데, 다른 책들도 좀 찾아 읽어 볼 생각. (추천 감사히 받습니다)









스티븐 크보스키, 월플라워

2008.10.16 23:00 Tags » 성장소설, 소설, 스티븐 크보스키, 월플라워,

월플라워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스티븐 크보스키 (돋을새김, 2008년)
상세보기


금서로 지정된 충격적인 성장소설, 이라고 표지에 버젓이 쓰여 있다. 책 날개를 펼치면 <호밀밭의 파수꾼>과 <단독강화>의 전통을 잇는 성장소설, 인생과 사랑, 우정에 관한 크보스키의 치열한 성찰과 곳곳에서 번득이는 영감이 아름다운 문체로 서술되어 있다-USA 투데이, 라고도 적혀 있고. 책 뒷표지를 보면 어른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生의 진실이라든지, <월플러워>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코드가 책, 영화, 음악 부문 별로 잘 정리되어 있다. 예컨대 <앵무새 죽이기>나 <위대한 개츠비>, <월든>, <록키 호러 픽처 쇼>, <죽은 시인의 사회>, <더 프로듀서>, <A sleep-더 스미스>, <Daydream-스매싱 펌프킨> 등등. 그러나.

이 책이 금서로 지정되었다면 그건 청소년들에게 아직 알려줄 수 없는 삶의 진실 같은 걸 담았기 때문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공공연히 마약을 하거나 섹스를 하고, 중절을 하는 장면을 심심찮게 삽입했기 때문일거고, "아름다운 문체" 같은 건 번역 탓이 아니라, 정말이지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고, 인생과 사랑, 우정에 관한 치열한 성찰은.. 너무 할리우드적이다. 문젯거리가 될 만한 과거의 어떤 지점을 볼모로 삼아 문제가 문제를 낳는 상황을 꾸역꾸역 만들어나가고, 클라이막스를 거쳐 대단원에 이르면 뭔가 큰 깨달음을 주는 것 같지만 그 깨달음의 깊이 자체가 너무 땅짚고 헤엄치기같은, 얄팍한.

<월플라워>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지표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자면. 아무리 다양한 문화적 지표들을 삽입하고 그런 것들이 일종의 은유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더라도, 실제로 원래 작품의 깊이가 충분치 못하면 아우라를 빌려오려는 시도로 읽힐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러니까 묻어가고자 하는 의도를 숨길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호밀밭의 파수꾼> 같은 걸 직접 갖다 붙이면 역효과까지 나기 일쑤다. 너무 비교되잖아.




래드클리프 홀, 고독의 우물

2008.10.15 23:00 Tags » The Night Watch, 고독의 우물, 래드클리프 홀, 사라 워터스, 소설, , 펭귄 클래식

고독의 우물 1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래드클리프 홀 (웅진씽크빅, 2008년)
상세보기

고독의 우물 2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래드클리프 홀 (웅진씽크빅, 2008년)
상세보기


펭귄 클래식이 출간되고 있다. 원 시리즈는 총 1200여 종이 넘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최대 50종, 5년 이내에 250 여종을 출간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현재 잘 알려진 고전문학도서 시장의 주요 브랜드가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밖에 상황이니 독자들 입장에서는 전적으로 환영할 만한 소식일 수 밖에. 게다가 펭귄 클래식은 장르나 국적, 시대에 얽매이지 않는 시리즈를 만들어나가겠다고 공언한 바라 더욱 더 기대가 된다. 그래서 이번에 책을 사면서 펭귄 클래식 시리즈 중 하나를 골라보겠다고 맘먹고 산 책이 <고독의 우물>이었다. 예이츠의 <켈트의 여명>로르카의 <인상과 풍경>,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등이 후보에 올라 있었지만 <고독의 우물>을 골랐던 건 "현대 영문학사 최초의 레즈비언 소설"이라는 타이틀 덕분이다. 1928년에 출간된 최초의 레즈비언 소설이라니. 사실 얼마 전에 읽었던 사라 워터스의 <The Night Watch>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바로 그 이전 세대가 보는 관점을 간접적으로나마 비교해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물론 사라 워터스와 래드클리프 홀은 한 세대가 아니라 1세기 쯤은 차이가 난다고 봐야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러가지 면에서 그다지 마음에 드는 작품은 아니다. 일단 표지.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히끄무레한 새벽, 뒷모습을 보이고 길 가운데 서 있는 사진. 검푸른 색조가 주는 심상이야 이해하겠지만 소설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어떻게 이런 표지를 갖다 붙일 수 있었는지 그 이해도가 의심스러운 수준이다. 책 내용에 어떤 관심도 주지 않고 표지만 보고 책을 고르는 독자들이 많다면야 칭찬을 받을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 사람들 역시 책을 다 읽고 덮은 후에는 표지를 보고 실소하게 될 것임이 틀림없다. 너무 심한 모순이란 말이지. 그런데 사실, 그러한 모순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더욱 더 큰 무게로 책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런 모순과 저런 모순들이 한데 뒤엉켜 어울리지 못한 채 이리저리 널려 있고, 그 중 제일 대표적인 게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외부와의 갈등 속에서 발생하는 모순, 그리고 주인공이 외부(사회와 국가)를 받아들이는 태도 사이의 모순이다. 물론 이 책이 쓰여진 시대를 충분히 감안하고 본다 쳐도,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의식과 관점을 이해한다고 쳐도, 그래도 책을 읽다 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는 지경. 도대체 일관성을 찾을 수가 없어 생각은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고, 이해해주고 싶어도 다른 상황이 발생하면 문제에 대처하는 태도가 홀라당 바뀌니 온정적으로 주인공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던 독자들도 어느 지점에선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고는 이렇게 웃는 거지. 허허. 여하튼. 작품이 그 모양이 된 건 아무래도 작가 본인의 삶이 너무 강하게 반영된 탓일 공산이 크다.  주인공은 나이를 먹고 먹고 먹어도 십대 사춘기의 감수성을 오롯이 지닌 채 내적 갈등이나 외부와의 갈등에 극적으로 반응하고, 그 모든 행위의 저변엔 심각한 수준의 나르시즘과 자기보호심리가 철철 흘러 넘치니까.

딱 하나 재미있었던 건 사라 워터스나 래드클리프 홀 모두 여성에게 기대되는 사회적 역할을 전복시킬 수 있는 계기로 전쟁을 들었다는 건데, 우연인지는 몰라도 <The Night Watch>의 케이와 <고독의 우물>의 스티븐 둘 모두 전시에 앰뷸런스 운전을 한다. 물론 그 일을 시작하는 이유나 접근하는 방식, 다루는 태도, 전쟁 이후의 변화를 반영하는 부분 등에는 거의 유사점이 없다시피 하지만. 일단 비슷한 그림을 상상하게 된다는 점에선 재밌었다. 아, 개인적으로는 <The Night Watch>쪽을 훨씬 선호하고.  

표지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다른 나라는 어떻게 출판했나 싶어 표지들을 좀 찾아보았다. 이하.. 노코멘트.







  1. Acala 2008.10.16 10:06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뭡니까, 이 신들린듯한 포스팅 연타는.

코맥 맥카시, 모두 다 예쁜 말들

2008.10.15 01:30 Tags » 모두 다 예쁜 말들, 소설, , 코맥 맥카시

모두예쁜 말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코맥 매카시 (민음사, 2008년)
상세보기

고백하건대 난 저 말이 horse가 아니라 word인 줄로만 알았다. 전혀 의심의 여지 없이. 그래서 책을 받아들고 표지에 그려진 선인장과 카우보이 모자와 말 그림을 보며 황망해 하고야 말았지. 요는, 작품에 대한 사전정보 따윈 전혀 보지 않고 작가의 이름만 믿고 책을 골랐다는 것이다. 겨우 한 권 읽고 그렇게 신뢰해도 되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코맥 맥카시의 경우엔 웬만한 책이면 평균 이상의, 혹은 그를 상회하는 가치를 충분히 갖고 있을 것이라 믿었고 이제 이런 부분에 대해선 내 판단을 신뢰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붙어가고 있어 기쁠 뿐이다. 그러니까, 이제야.

카우보이 얘기라곤 <브로크백 마운틴>밖에 읽어본 것이 없고, 범주를 넓게 쳐서 서부극에, 멕시코가 무대인 영화까지 놓고 봐도 본 거라곤 <데스페라도> 하나다. 아, <마스크 오브 조로>를 빼먹었나. 하하. 그래도 전혀 낯선 느낌이 없는 독서인 건 이 책의 큰 줄기가 성장소설에 가깝기 때문이다. 말과 소, 땅 같은 걸 인생의 중심에 조금 더 가깝게 놓고 자라나는 소년(마지막에 가서야 알았지만 얘가 겨우 열 여섯이다)이 비뚫게 짜인 격자무늬처럼 이리저리 걸쳐지는 사람들과의 관계, 교류와 사건 속에서 자신의 진짜 중심을 찾아가는 이야기. 소설이 진행되는 중 큰 고비마다 펼쳐지는 작은 에피소드들의 짜임도 좋고 큰 줄거리와의 붙임성도 좋아서 제대로 된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괜찮은 성장소설에서 언제나 그렇듯 주인공이 잃어 온 수많은 것들에 비해 '성장' 그 자체는 너무 보잘것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 모든 것을 잃고서도 여전히 빈 손으로 어디 있는지 모를 내 나라를 찾아 나서야만 하니까. 그저 조금 더 외로워진 채로.


  1. syz 2008.10.15 23:25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나는 이 글을 어제 보고 오늘 출근하기 전에 또 보는데 이제서야 word가 아닌 것을 깨닫고 황망해하고 있다. 아... -_-
    >> 그러나 이런 종류의 괜찮은 성장소설에서 언제나 그렇듯이 주인공이 잃어 온 수많은 것들에 비해 성장 그 자체는 너무 보잘것 없어 보이는게 사실이다.
    정말이지 그렇다!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