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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잠 - 새벽의 저주

2008.07.14 08:10 Tags » , , , , , ,

한 열흘인가, 길게는 2주일 쯤 제 시간에 잘 찾아와 주지도 않고 왔다가 금방 떠나고, 그 짧은 동안에도 내내 들락날락하던 잠 때문에 컨디션이 점점 티나지 않게 조금씩 허물어져간다고 느끼고 있던 와중에 드디어 3일 전, 오랜만에 침대에 머릴 놓자마자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듯 잠이 들었다. 중간에 한번도 깨지 않았지만 유감스럽게도 너무 일찍 눈을 떴고, 그 다음 날엔 다시 잤는지 말았는지 모를 밤을 지내고, 어제, 또 다시 찾아와주었다. 머리를 통채로 어둠속에 밀어넣는 듯한 잠. 꿈도 기억나지 않고, 중간에 꿈과 현실의 경계를 떠돌지도 않았으며, 결정적으로 아침 일찍 전화를 받고 눈을 떴다가, 통화를 끝내고 다시 잠이 들었다. 더 자야 할 것 같아, 잠이 올까, 아아, 잔다. 브라보.

하여간 내가 그런 상황인지라 <새벽의 저주>를 보면서도  잠에 관련된 공포-두려움이 전혀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이 은근히 의아했다. 폐쇄된-혹은 구멍이 있는지도 모르는- 공간에 고립되었고, 구멍이 있다면 언제 좀비들이 뚫고 들어올지 모르고,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다들 잠은 잘 자는 걸까. 무섭고 걱정되고 힘든 일이 있으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그 불면에서 다시 그 불안과 공포가 증폭되는 걸텐데. 영화를 통틀어서 자는 장면은 딱 두 번 나온다. 처음 영화 시작할 무렵, 애나 부부가 잠들었다가 깨서 비비안이 문간에 서 있는 걸 보는 장면과 몰에 도착해서 침구가게에 감금된 채 각기 잠을 청하는 장면. 뭔가 마시고 먹는 장면은 주구장창 나오는데 자는 장면이 없다는 건 그 외의 부분이 이미 일상적이라는 뜻이거나, 특별히 다른 의미를 부여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잖아. 정말, 그 상황에 불면증이 생기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거야?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누가 뭐래도 잠 하나는 끝내주게 잘 자는 사람이었다. 푹 자는 편이라 수면시간이 적어도 알차게 자는 편이었고. 여기저기 우스개소리도 하고 다녔지. 진화형 인간이라고. 8시간 잠이 꼭 필요하다는 그에게 코웃음을 친 적도 있다. 다시 한번 사죄를. 그치만 지금 난 여덟 시간이 아니라 두 세 시간도 제대로 못잔다구요. 용서해주세요.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그리하여 이 쇼핑몰 동거인들은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것 보다 낫다고 굳게 믿고 쇼핑몰을 나서는데 이건 다소간 자포자기에 가까운 선택이라 오히려 잠도 잘 자는 게 일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역시 마음 한구석엔 이 사람들이 정말로 자기들이 죽음을 향해 간다고 생각했을까 미심쩍은 것이, 나는 여전히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말로. 죽음 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이들이 굳이 귀찮게 죽으러 나갈 이유가 없잖아, 그냥 총을 입에 물면 될걸.

그리하여.. 이 영화의 마지막은, 납득이 된다. 음식엔 구더기가 가득하고 망망대해 바다를 향해 갈 연료도 없다. 사랑하는 이를 버리고 굳이 도착한 섬엔 좀비가 가득하고, 진퇴양난. 죽어도 좋댔지, 기다리느니 죽으러 갈거랬지, 그럼 굿나잇. 모두들 안녕. 니들이 가진 게 희망이었건 절망이었건 여기 남은 건 절망이란다. 그러니 안녕. 너희들이 말하던 죽음은 사실 이런 거였단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지, 라는 굉장히 산뜻한 일상에 가까운 결말.  





PS. 사라 폴리의 단호함은 이 영화가 가진 또 하나의 미덕.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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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cala 2008.07.14 13:23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무서운 이야기를 꽤나 태연스레 늘어놓잖아...

  2. BlogIcon masaru 2008.07.14 23:55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게다가 스포일러를 어색함 없이 아주 매끄럽게 끼워 놓으셨군요!

  3. 해면 2008.07.26 14:57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생각 많아지면 잠이 줄고 그렇지 뭐.
    성분이 좀 바뀌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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