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는 댄의 마음 속에 의심의 씨앗을 심으며 넌지시 알려주었다. 언제 어디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곳 같은 건 세상에 없다고. 한 걸음만 옮기면 안전한 곳으로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도 사실 안전한 곳 따위는 아무데도 없고, 혹여 있더라도 그곳은 진실을 사실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만을 위한 장소라고. 그러니 갖고 싶은 것, 욕망하는 것, 그러나 내것이 아닌, 실체없이 모호한, 손에 닿지 않을 듯한 것만을 향해 떠돌던 댄이 확고한 무게를 지닌 앨리스의 진실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왜 그녀는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닌가 하며 소리 지르고, 화내고, 애원하고, 울고, 탄식하던 래리는 안나의 욕망이 향하는 방향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던 것 뿐이라는 진실-사실을 깨닫고 힘주어 뻗대며 발버둥치던 마음을 내려놓는다. 꼭 같은 무게의, 꼭 같이 생긴 마음이어야만 함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같이 머무르며 서로 몸을 기대고 마주 바라보며 나누는 말들이 위안이 될 수 있다면. 그 체온 만으로도.
그러니까 요는, 진실이 필요하지 않을 리 없다. 그 어떤 관계도 진실 없이, 그 힘 없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도 하고. 그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진실'을 알기 이전에 우리가 그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바꾸거나 움직이려 하지 않고, 그 생긴 모습 그대로 받아 안을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어야 할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어떤 모습이건 간에 잡은 손을 놓지 않을 수 있다면, 혹은 산뜻하게 손을 놓고 뒤돌아 설 수 있다면. 그래야 그 다음이 존재하는 거고, 그것이 진실을 향한, 진실의 힘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올바른 자세.
Jay Jay Johanson - QUEL DOMMAGE
[##_Jukebox|cfile23.uf@165B4C2E4C7BD5E1F1E2ED.mp3|02 Quel Dommage.mp3|autoplay=0 visible=1|_##]
QUEL DOMMAGE. This was supposed to last FOREVER. I used to say it's NOW or NEVER.
'보고들은것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체인즐링, Changling (2009) (1) | 2009.02.27 |
---|---|
해프닝, The Happening (2008) (0) | 2008.10.14 |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 관한 고백. (2) | 2008.08.26 |
[영화] 클로저 Closer (5) | 2008.07.21 |
[영화] 잠 - 새벽의 저주 (7) | 2008.07.14 |
[영화] 타인의 삶 (0) | 2008.04.28 |
저와 비슷한 시선으로 보셨네요. '진실'에 초점을 맞춰서. 사실, 영화 자체는 좋았던 거 같은데, 그 진실에 집착하는 거 때문에 저는 숨이 막히더라고요. 그야말로 저의 아킬레스 건을 탁 건드린 거죠. 모든 걸 다 말해라, 안전하다 이렇게 말하는 데 참 웃기더라고요. 웃음만 나왔어요. 진실, 그 실체가 뭐 그리 대단한 건지도 저는 잘 모르겠고요. 음악까지 더불어 잘 듣다가요. 저만 너무 이 영화 보고 '으악'한 거 아닌가 싶었는데 되려 반갑네요.
사실 저는 클로저를 관계의 무게중심이나 욕망을 다루는 방식에 시선을 맞추고 봤는데 딸기뿡이님 글 읽고 문득 이런 저런 생각이 나서 써보았어요. 감독이 워낙 캐릭터를 표현하면서 적당히 거리를 두기도 했고, 필요할 때 빛을 발하는 유머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던 덕분에 좀 구경하는 기분으로 건조하게 볼 수 있었던 영화였죠. 다짜고짜 트랙백 걸었는데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저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왠지 뒤통수를 한 방 맞는 듯한 느낌이 드는 감상문이네.
내가 뭔가에 계속 실패하고 있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된 이유는 바로 저런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카라사마 블로그는 없우?
있긴한데, 밖으로 내돌리긴 좀 뭐한 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