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 관한 고백.

2008. 8. 26. 06:02 Tags » , , , ,

어느 블로그에서 한 영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로 점철된 글을 보고 문득 떠올린 경험 하나. 나도 저런 식으로 일단 싫다는 식의 거부감에 절어 남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느라 진땀을 뺀 기억이 있다. 그 영화가 바로 <복수는 나의 것>. 감독은 누구라도 익히 알만한 박찬욱. 당시 박찬욱 감독의 전작은 <공동경비구역 JSA>였고, 그 영화는 누가 뭐래도 보기 쉬운, 적절한 유머 감각과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현실감각을 잘 조율한 영화였던 덕에 흥행에도 성공했던 작품이었다. <복수는 나의 것>이 개봉할 무렵 이 영화의 마케팅 팀은 박찬욱 감독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복수는 나의 것>에서 시작된다고 떠들어댔다. 기실 마케팅 자체도 애매하기 짝이 없어서 감독이 박찬욱이고, 박찬욱이 정말로 만들고 싶었던 영화고, 영화가 하드보일드 하다는 것 외에 그러니까 어떻게 하드보일드하며 어떤 모양새를 갖춘 영화인지에 대해선 흐물흐물 어물어물 대강 넘어가주길 바라는 기색이 완연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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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여하간. 당시 박찬욱 감독을 저어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던 덕에 흔쾌히 영화를 보러 갔고, 상영이 시작되고 한 시간 반. 도대체 그 시간을 어떻게 제 정신으로 버텼는지 여전히 까마득하다. 온갖 종류의 고문과 상해, 사람을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괴롭힐 수 있는 갖가지 방법이 동원되는 가운데 나 역시 정신적으로 괴로웠고 상처받았다. 똑같이 온갖 폭력과 상해, 고문과 학대를 늘어놓아도 <살로 소돔의 120일>이 오히려 낫다 싶은 건 그 영화는 그 모든 걸 일종의 목록이라도 되는 양 주워섬기는 덕에 어떤 포장도 없는, 오히려 A부터 Z까지만 가면 별일 없이 끝나는 걸 아는 백과사전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마련인 반면, <복수는 나의 것>은 그 폭력과 감정들 간의 인과관계를 촘촘히 엮어놓은 덕에 그 이야기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비극을 예상하고 그 모든 게 끝나기를 무력하게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일 거다.

그러나 <복수는 나의 것>에 유달리 예민하게 반응하고 비난을 늘어놓았던 건 딱히 내가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폭력 장면을 유독 섬세하게 받아들였던 탓도 아니고, 영화에 몰입하는 정도가 다른 사람들보다 강한 편이라 그랬던 탓도 아니었다. 그저, 그때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대체로 너무 나이브했던 거지. 아니 꼭 저렇게 갈 수 있을 데까지 가봐야만 하는 거야? 그게 뭐든 꼭 끝을 봐야 해? 어떻게 저렇게 브레이크 하나 안 걸고 계속 달리기만 하는 건데? 그래서, 끝까지 가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 무전무죄 유전유죄 무전유죄 유전무죄, 세상은 부조리하다, 그러니까 달리자? 아니 쟤들은 상상력도 없냐. 어떻게 저렇게 폭력에 무감할 수 있어. 특히 날 완전히 돌게 했던 건 마지막 부분, 박동진이 강에 서서 너 착한 놈인 거 안다며 지친 표정으로 류의 아킬레스 건을 베던 장면이었다. 알긴 뭘 알아 대체. 이제야 나는 폭력 자체에 감정을 이입하지 않은 채 정확하게 필요량을 계량해서 내놓는 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갖다붙일 수 있는 복수의 이야기가 된다는 걸 어쩔 수 없이 수긍하고 있긴 해도 , 또, 사실은 그 영화가 복수나 폭력이나 그 둘을 버무려서 만들어 낸 성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비극적인 부조리와 그로 인한 파국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그래도. 아니, 거기서 꼭, 너 착한 놈이니까 나 이해하지 물었어야 했냐고. 그건 뭐야, 이 물고 물리는 파국의 종말을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인 거잖아. 이제 수긍하겠냐고. 게다가 감독은 방점을 찍느라 사뭇 무책임하게도 박동진의 가슴에 꽂힌 칼이 찍어 누른 사형 선고문에 대체 뭐라고 쓰여 있는지 그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비극은 그저 비극이라 이거지. 개인의 귀책사유 따위야 어느 코에 붙이는 코미디냐는.

그러니까 이제야 고백하건대 결국 내가 견뎌내지 못했던 건 피도, 전기도, 칼도, 송곳도 아닌 비극 그 자체였던 셈이다. 비극이 비극으로 끝나는 것을 두 눈 뜨고 지켜보지 못하는 내 안의 유약하고 비겁한 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거. 그래서 내가 인정할 수 없는 이 영화를 비난할 만한 적당한 핑계거리를 찾느라 사기 마케팅이니 납득할 수 없는 폭력이니 피 냄새니 떠들어대면서도 한 구석이 켕기는 걸 다 숨기지는 못했던 거고. 창피해서 그랬나. 아니면 정말로 뭐가 뭔지 잘 들여다보질 못했던가.

사실 내가 이런 류의 비틀린 심사로 남몰래 미워했던 작품은 <복수는 나의 것> 뿐만이 아니다. 하는 김에 몽땅 찾아서 사죄하는 심정으로 목록이라도 올릴까 했지만 멍석 깔면 으레 그렇듯 딱히 생각나는 게 없고.. 아, 폴 오스터의 <폐허의 도시>와 도리스 레싱의 <생존자를 위한 비망록>. 이건 또 다른 의미로 괴로워서 방바닥을 이리저리 굴러대며 읽어낸 후 기억 저편에 영영 보내버린 기억이 생생하다. 분명히 말해서 싫은 거랑 괴로운 건 다른 건데.. 역시 어려서 그랬다 치지 뭐. 앞으로 잘 구분해서 정리하는 걸로 하고. 그게 잘되면 나름 성장기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나저나 벌써 6년인가. 6년 전에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는 이것으로 일단 마무리.



덧붙여. 이건 무려 7월 28일에 작성하기 시작한 글인데.. 한 달이 안 걸렸다는 데 큰 의미를 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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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26 09:3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jools 2008.08.26 13:03  address  modify / delete

      요즘 뭘 봐도 서리서리하지 않은 건 대체 무슨 조화인거야.
      사실 이쪽도 검증할 길 없기는 마찬가지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