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 외딴집

2008. 11. 9. 14:34 Tags » , , ,

외딴집(상)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미야베 미유키 (북스피어,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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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집(하)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미야베 미유키 (북스피어,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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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미야베 미유키 작품을 하나도 제대로 읽은 게 없다. 도서관에 들렀을 때도 몇 번씩 책을 집었다가 놓았고 살 책 목록에 몇 권 들어가있기도 했지만 결국 장바구니엔 넣질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이게 처음으로 읽은 작품이다. 책이 처음 배달되어 왔을 땐 꽤 두툼하게(각 권 450페이지 가량) 분량으로만 치면 최근 출판사들이 책 내는 습관을 감안해봤을 때 적어도 세 권, 느긋하게 네 권쯤은 너끈하지 않을까 싶어서 딱 2권으로 묶어 출간한 출판사의 결정이 의외다 싶었는데, 읽고 나서 돌아보니 이야기의 흐름이나 호흡을 고려해서 애매하게 잘라 권 수를 늘리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은 게 장하다고 느껴진다.

배경은 에도 시대, 무대는 바다에 인접한 작은 지방. 무대가 되는 도시의 구조 자체가 이야기의 갈등을 끌어가는 매개 중 하나라서 사뭇 섬세하게 묘사해낸다. 작가의 설명을 잘 따라가다 보면 굳이 첫 장에 그려준 지도를 보지 않아도 스스로 머릿속에 무대가 되는 마루미 번의 지도 쯤은 그려낼 수 있고. 작가가 이용하는 건 도시의 구조만이 아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기후와 날씨를 끌어들여 이야기의 전개 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감정과 소설 전체의 분위기까지 통제하고 있다. 환경묘사에 들이는 공만큼이나 아주 미미한 역할을 하는 등장인물의 캐릭터 하나하나 공들여 만든 티가 나서 잠깐 등장한 캐릭터의 한 마디 대사로도 그 인물의 캐릭터, 사건의 전개와 분위기를 쉽게 읽어낼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

외딴집은 물샐틈 없이 단단하게 고착되어 있는 계층구조 안에서 누구도 모르게(그렇지만 결국 누군가는 알게 되는) 비밀스런 계략들이 얼기설기 거미줄처럼 뻗어나가 결국 그 구조물 자체를 흔들고 마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중심의 사건은 먹이사슬의 최하층,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선한 여자아이 하나와 성실하고 정직한 처녀애 하나의 인생도 흔들어놓게 되고. 앞서 이야기했듯 그 둘을 스쳐가는 사람들이 상당히 입체적으로 존재한다. 재미있는 점은 답답하게 억눌린 에도시대를 그린 이 소설에서 읽어낼 수 있는 부조리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의 그림자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는 거. 그러나 사람 사는 거 별다를 게 있겠느냐는 통속적인 관점 수준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의 시대를 구성하고 움직이는 욕망의 방향을 집어내서 섬세하게 펼쳐놓아 분명한 설득력을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표지가 소설과 썩 잘 어울린다. 책을 읽으면 캐릭터의 인상이나 사건의 장면장면들이 은은하게 빛 바랜 옛 그림처럼 그려지는 느낌도 좋고. 이만큼 성실하게 묘사해놓고 구백 페이지라니, 살짝 부족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술술 잘 읽힌다. 워낙 출간된 작품이 많긴 하던데, 다른 책들도 좀 찾아 읽어 볼 생각. (추천 감사히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