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즐링, Changling (2009)

2009. 2. 27. 05:10 Tags » , , , ,


(언제나 그렇듯 스포일러가 가득합니다. 특별히 숨겨야 할 것도 없는 내용이긴 해도.)



중요한 건 아이가 그 지옥에서 무사히 벗어나서 어딘가에 살아있는지, 혹은 달아나다 잡혀 미친놈의 무자비한 도끼질 아래 죽고 말았는지가 아니었다. 사실 영화의 줄거리를 잘 따라가다 보면 누구나 다 그게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되기 마련이다. 그건 그저 크리스틴 콜린스를 움직이게 하는 두 가지 힘 중 하나였을 뿐. 나머지 하나는 알 수 없는 '사실'-아이가 죽었는가 살아있는가-의 진실 여부를 원하는 크리스틴에게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으며, 중요한 건 그 '사실'이 끼치는 영향력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투쟁이었고. 그러므로 그 투쟁이 어느 정도 종료된 상황에서도 크리스틴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진실을 향해. 너덜너덜한 희망의 동앗줄 하나를 가까스로 붙잡은 채.

다시 돌아와서, 내가 궁금했던 건 캡틴 존스가 정말로 믿은 건 어떤 것이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는 정말로 그가 기차역에서 크리스틴과 만나게 해준 아이가 크리스틴의 아이라고 믿었을까. 기차역으로 돌아가보자. 저 멀리 와글와글 모여있는 기자들과, 쇼를 위해 출연 대기중인 경찰청장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막상 아이를 만난 크리스틴은 내 아이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반대로 아이는 엄마라고 말하고. 캡틴 존스는 크리스틴을 설득한다. 뭔가 잘못된 것 같으면 나중에 찾아오라고. 혹시 모르니까 익숙한 환경에서 아이와 지내보고, 다시 확인하고, 그래도 잘못된 것 같으면 찾아오시라. 충분히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크리스틴의 마음이야 어쨌건 간에 어떻게든 사진도 찍고, 감동적인 재회가 만천하에 공개된 이상 캡틴 존스에게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니라 사실이다. 일단 믿으라고 들이댄 사실. 그리고 폭주하는 기관차마냥 일단 달리기 시작한 거, 브레이크 따윈 없는 거다. 진실이 무엇이건 무슨 상관이랴. 이건 사실, 그냥 팩트라니깐.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캡틴 존스는 일종의 희생양 노릇을 충실하게 해내는 와중에 재판에서 진술하면서도 그 아이가 크리스틴의 아이가 아니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없다는 논지를 전개한다. 편견과 아집,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휘둘러온 공권력의 횡포까지 곁들여 견고하게 쌓아올린 논리로 단단히 무장한 채. 재밌는 건 이 지점에서 캡틴 존스의 의견과 크리스틴의 의견이 맞물리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는 거다. 월터 콜린스가 고든의 농장에서 죽었다는 근거가 없다는. 이 영화가 우리나라 아침 드라마라면 이 지점에서 크리스틴과 캡틴 존스가 연합전선을 구성할테지만 이건 다 뻘소리고. 여튼.

체인즐링의 최고조를 장식하는 건 고든이다. 모든 키를 쥐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고든. 그 모든 고통을 이해할 만한 상상력도, 그 모든 고통을 공감할 만한 양심도,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던 고든. 그 어떤 진실에도 맞서지 못했던 고든. 심지어 코 앞에 다가온 죽음 앞에서조차. 클린튼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가 상당히 잔인한 게, 고든을 클라이막스에 두고서 마지막에 희망을 이야기하는데, 그야말로 참, 썩은 동앗줄인가 싶어 잡기를 저어하게 만드는 희망인거다. 그래도 그것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은 잡아채지 않을 수가 없을 거고. 크리스틴이 그렇게 희미하게 웃듯이.




  1. Acala 2009.03.11 12:5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오랫만에 등장하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