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맥 맥카시, 로드 The Road

2008. 10. 9. 06:47 Tags » , , , ,

로드(THE ROAD)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코맥 매카시 (문학동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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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위엔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 한참을 걸은 뒤에 돌아봐도 얼마나 왔는지, 정말로 전진하고 있긴 한건지 알 수가 없다. 가도 가도 끝없는 길 위에 재가 가득 쌓여 그 길의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지. 발을 멈추는 그 순간 삶 역시 멈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걷고, 먹고, 다시 걷고.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로. 가끔 먹을 것을 찾기 위해 허물어져가는 건물의 잔해를 수색하는 장면은 로빈슨 크루소를 떠올리게 한다. 로빈슨 크루소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적절하게 난파한 배들이 해변에 밀려와주면, 그는 구석구석 잘 뒤져서 말린 곡식이나 육포 같은 각종 저장식품들, 낟알들을 찾아내 보리 한톨 빠지지 않게 목록을 작성하고 창고에 저장한 후 그 낟알 중 일부는 싹을 틔워 미래를 대비했다. 그러나 그것은 머무는 자의 삶이다. 어디로든 떠나지 않아도 되는,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그 다음 날도 이곳에 머물 것이 약속된 사람의 삶에는 계획이 필요하고, 생산도 가능하지만 길 위에 선 아버지와 아들은 기껏 찾아낸 꽃씨를 주머니에 넣고서도 이걸 어쩌겠다는 것인가 한숨짓고 만다. 오늘 밤 어디서 비를 피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삶. 그래도 그들은 종종 대화한다. 대부분 짧고 단촐하며 반복적이긴 해도 그 어떤 경구나 격언보다도 많은 걸 담고 있는 대화. 길 위의 고단한 삶 가운데 위안이 되고 의미가 있는 것은 그들의 대화 뿐이므로 그 대화는 줄곧 이어져야만 한다. 그래서 소년은 약속한다. "아빠하고 매일 이야기를 할게요. 그리고 잊지 않을게요. 무슨 일이 있어도."

로드는 단점의 거의 보이지 않는 소설이다.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다. 고단하고 험난한 장면이 줄곧 마음을 괴롭게 하지만 작가는 쉬어가는 지점을 잊지 않는다. 온통 절망 뿐이요, 미래도 없는 것 같지만 중간에 가끔씩 불편한 마음을 내려놓을 때면 쉽사리 희망이 달콤한 향내를 풍기며 가늘게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곤 한다. 사람이란, 얼마나 쉽게 기대하고 희망하며 절망하는지. 이야기가 나락으로 치달을 수록 찰나의 변화는 극적이기 마련이다. 간만에 베스트셀러의 미덕을 찾아낸 터라 흡족한 마음이지만, 온갖 너저분한 수사를 가득 담고 있는 띠지-베스트셀러의 증거-를 보고서도 이 책을 서점에서 집어들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감히 <성서>에 비견되는 소설!" 이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인지. 어쩌란 말인지. 어휴. 그럼에도 불구하고, 띠지의 절망을 이겨내고 책을 집어들기만 한다면, 어지간해선 이 책을 고른 걸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1. BlogIcon hey 2008.10.10 02:1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 정말 사기 싫은 띠지네요. -.-
    하지만 난 그걸 이겨내고 총/균/쇠를 샀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