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맥큐언, 체실 비치에서

2008. 10. 10. 03:51 Tags » , , ,

체실 비치에서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이언 매큐언 (문학동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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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순간들이 있다. 아, 이건 분기점이다. 지금, 여기서의 내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드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하는. 그리고 그 순간들은 평소보다 훨씬 느리게 지나간다. 누군가가 일부러 느리게 재생한 필름처럼, 또박또박 느리게. 그래서 나중에 그 기억을 떠올릴 때도 재생 속도는 생생하게 같다. 가끔은 더욱 느려지기도 하고. 이언 매큐언의 <체실 비치에서>는 그 순간을 가운데 놓고 과거와 미래를 속도감 있게 펼쳐놓는다. 과거는 분수령을 향한 긴장과 불안을 수반하고 미래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향한 고통과 후회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이 소설은 중편이라기에도 분량이 살짝 모자라지만 캐릭터나 사건의 성격 등이 많은 설명을 요구하는 타입이 아니어서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구성은 탄탄한 편이다. 그래도 역시 성급한 젊음이나 맹한 결벽증 따위로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이야기 자체에서 매력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러한 시대에, 그러한 모습으로, 하필이면 그 둘이 만나 그렇게 되었으나, 그게 보편적인 아쉬움과 연민을 끌어올리는 힘을 갖고 있지는 않고. 오히려 책을 덮고 나면 한 편의 긴 농담을 읽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된 어리석은 젊음에 대한 조소와 같은.
그러니까 딱히 유쾌한 기분은 아니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