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맥 맥카시, 모두 다 예쁜 말들

2008. 10. 15. 01:30 Tags » , , ,

모두예쁜 말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코맥 매카시 (민음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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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난 저 말이 horse가 아니라 word인 줄로만 알았다. 전혀 의심의 여지 없이. 그래서 책을 받아들고 표지에 그려진 선인장과 카우보이 모자와 말 그림을 보며 황망해 하고야 말았지. 요는, 작품에 대한 사전정보 따윈 전혀 보지 않고 작가의 이름만 믿고 책을 골랐다는 것이다. 겨우 한 권 읽고 그렇게 신뢰해도 되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코맥 맥카시의 경우엔 웬만한 책이면 평균 이상의, 혹은 그를 상회하는 가치를 충분히 갖고 있을 것이라 믿었고 이제 이런 부분에 대해선 내 판단을 신뢰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붙어가고 있어 기쁠 뿐이다. 그러니까, 이제야.

카우보이 얘기라곤 <브로크백 마운틴>밖에 읽어본 것이 없고, 범주를 넓게 쳐서 서부극에, 멕시코가 무대인 영화까지 놓고 봐도 본 거라곤 <데스페라도> 하나다. 아, <마스크 오브 조로>를 빼먹었나. 하하. 그래도 전혀 낯선 느낌이 없는 독서인 건 이 책의 큰 줄기가 성장소설에 가깝기 때문이다. 말과 소, 땅 같은 걸 인생의 중심에 조금 더 가깝게 놓고 자라나는 소년(마지막에 가서야 알았지만 얘가 겨우 열 여섯이다)이 비뚫게 짜인 격자무늬처럼 이리저리 걸쳐지는 사람들과의 관계, 교류와 사건 속에서 자신의 진짜 중심을 찾아가는 이야기. 소설이 진행되는 중 큰 고비마다 펼쳐지는 작은 에피소드들의 짜임도 좋고 큰 줄거리와의 붙임성도 좋아서 제대로 된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괜찮은 성장소설에서 언제나 그렇듯 주인공이 잃어 온 수많은 것들에 비해 '성장' 그 자체는 너무 보잘것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 모든 것을 잃고서도 여전히 빈 손으로 어디 있는지 모를 내 나라를 찾아 나서야만 하니까. 그저 조금 더 외로워진 채로.


  1. syz 2008.10.15 23:2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나는 이 글을 어제 보고 오늘 출근하기 전에 또 보는데 이제서야 word가 아닌 것을 깨닫고 황망해하고 있다. 아... -_-
    >> 그러나 이런 종류의 괜찮은 성장소설에서 언제나 그렇듯이 주인공이 잃어 온 수많은 것들에 비해 성장 그 자체는 너무 보잘것 없어 보이는게 사실이다.
    정말이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