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영원한 이방인, 이창래

2008. 7. 15. 02:50 Tags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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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가에게든 몇 번이고 이야기한 적이 있을 책 중의 한 권. 아침에 눈을 떠서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 몫의 잡생각을 뒤적대다가 건져낸 애매한 욕구 하나. 영원한 이방인에 관해 말해 보기.

그동안 영원한 이방인에 관해 써보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했던 건 이 책이 불러 일으키는 심상-기억-느낌을 표현한 단어들을 문장으로 엮는 데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해도 문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거다. 마치 이 책을 읽는 내내 느껴야 하는 강제적인 거리감, 그러니까 주인공이 대상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동원하는 모든 수사에도 불구하고 전혀 줄어들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그와 사물-사람-가족-사회-언어와의 거리처럼, 내가 떠올리는 모든 단어들은 그 사이가 한참 멀어서 엮어봐야 너무 성긴 그물망인양 영 쓸모 없어지고 말았기 때문에.

이야기 하려고 하면 할수록, 가까워지려고 하면 할수록 도리어 그와 나 사이의 거리와 차이만 확인하게 되는 건 정말이지 겪어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 중 하나. 주인공 헨리는 줄곧 그래서 그가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질감에 대해 설명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이방인의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쓸모 없는 몸짓만 되풀이하고 만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것은 그리 타고났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피부색이 달라서거나, 그가 다른 문화권의 가정에서 자라났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다른 이들과 제대로 소통할 수 없었던 건 분명히 "언어를 엉터리로 말하는 사람" 이었기 때문이었던 게 맞지만, 그건 언어구사능력과 하등 관계가 있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다만, 그 언어에 얼마만큼의 진실을 담을 줄 아는가 하는 문제였겠지.

사람의 말에는 언제나 어느 만큼의 거짓과 어느 만큼의 진실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말의 진실성이라는 건 확신할 수 없는 진실의 무게가 거짓을 충분히 덮은 다음에야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이고, 우리가 알거나 알지 못하는 거짓이 언제나 그 밑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말'은 언제든 쉽사리 공허해질 가능성을 가득 품고 있는 거고.

헨리도 알고 있었다. 그건 헨리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 혹은 아줌마와의 소통, 그들의 문화와 그들의 방식에 거리를 두면서 생겨난 습관으로부터 비롯된 무의식적인 거리두기에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고, 혹은 언제나 제스처를 취하다가 그 제스처가 방향을 잃은 채 단단한 껍질처럼 온몸을 에워싸버리고 말았을 수도 있는 거고. 어떤 식으로든 헨리는 아주 적은 양의 진실을 희미하고 티나지 않게 섞어넣은 언어만을 구사하게 되었으니까.

헨리의 방식은 대부분의 경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조금은 불편한 게 없지 않겠지만, 그냥 저냥 지낼만은 할 것이다. 헨리의 방식이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는 건 누군가가 그를 바라보고,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고, 그의 말에 질문을 던지게 될 때 부터일 것이다. 사랑하는 그녀는 알아차릴 수 밖에 없겠지. 그의 말이 왜 엉터리인지, 그가 던지는 말이 그녀에게 전하는 진실의 무게가 얼마만큼인지. 왜 그는 언제나 희미하게만 존재하는지. 그래서 그녀는 말하게 된다. "언어를 엉터리로 말하는 사람".

물론 헨리가 집착하는, 줄곧 풀려고 애쓰는 퍼즐은 진실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그는 언제나 뜻을 전달하는 매체로서의 언어 뿐 아니라 사회적-지적 지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서의 언어에 대해서도 불편함을 느낀다. 내이티브 스피커가 아니기 때문에. 이민자들의 언어, 그 역시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지속적으로 인식해야 하는 타인과의 거리-차이를 느끼게 하기 때문에 진실을 담는 언어의 문제와 그 언어를 구사할 때의 이물감-불편함이 통째로 뒤섞여 결국 한 편의 예쁘게 잘 꼬인 인생을 창출해 내었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그런 것에 관한 책.

주인공 헨리가 언어를 표현하는 방식과 그 언어에 무엇을 담아내야 하는가를 두고 내내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것과 달리 작가 이창래는 좋은 언어-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하며(물론 이 언어가 영어인가 한국어인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가 가진 좋은 언어에 충분한 뜻을 담을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언제나 주목하고 있는, 몇 안되는 작가 중 한 명이기도 하고. 아, 좋은 문장을 만들어낼 줄도 안다. 깔끔하게 잘 정제된, 의미로 가득 찬 문장. 다음에 이 작가의 책을 읽을 땐 영어로 읽어볼까 싶기도 하지만, 가끔 짓궂게 이 작가가 구사하는 한국어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여전히 아름다울까. 아마도 그럴 거다. 정말로 중요한 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하는 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