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깨꽃, 마종기 / A Beautiful Mess, Jason Mraz

2008. 7. 15. 20:15 Tags » , , , , ,


헤어져 살던 깨알들이 땅에 묻혀 자면서 향긋한 깻잎을 만들어내고, 많은 깻잎 속에 언제 작고 예쁜 흰 깨꽃을 안개같이 뽀얗게 피워놓고, 그 깨꽃 다 보기도 전에 녹녹한 깨알을 한 움큼씩 만들어 달아주는 땅이여. 깨씨가 무슨 흥정을 했기에 당신은 이렇게 농밀하고 풍성한 몸을 주는가.

그런가 하면, 흐려지는 내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꽃씨가, 어떻게 이 뒤뜰에 눈빛 환해지는 붉은 꽃, 보라색 꽃의 연하고 가는 피부를 만드는가. 땅의 염료 공장은 어디쯤에 있고 봉제 공장은 어디쯤에 있고 향료 공장은 또 어디쯤에 있기에, 흰 바탕에 분홍 띠 엷게 두른 이 작은 꽃이 피어 여기서 웃고 있는가.

나이 들수록 남들이 다 당연하다며 지나치는 일들이 내게는 점점 더 당연하지 않게 보이는 것은 내 분별력이 흐려져가기 때문인가. 아무려나, 흐려져가는 분별력 위에 선 신비한 땅이여, 우리가 언제 당신 옆에 가면 그때부터는 당신의 알뜰한 솜씨를 다 알아볼 수 있겠는가. 흙이 꽃이 되고, 흙이 깨가 되는 그 흥겨운 요술을 매일 보며 즐길 수 있겠는가.

늘어만 가던 궁금증이 하나씩 해결되는 깨알 같은 눈뜸이여, 나는 오늘도 깨꽃 앞에 앉아 아른거리는 그 말을 기다리느니, 어느 날 내 몸도 깨꽃이 되면 당신은 내 말과 글이 드디어 향기를 가지게 된 것을 알 수 있겠는가. 부르고 싶었던 노래를 찾아 헤매던 날들은 지나고 드디어 신선한 목숨이 된 나를 알아볼 수 있겠는가.


깨꽃 / 마종기,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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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도, 당연하지 않은 것의 경계도 희미해져만 가고 그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서서히 색을 잃고 빛바래며 내가 알던 향기조차 더 이상 충분히 달콤하지 않은, 불투명하고 어두운 밤들. 나는 무슨 꽃이 되어야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을까.

무얼 원하는지 잘 모른다는 건 내 마음속에 자리잡은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 선택을 미루고, 행동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아무리 작정하고 내 머릿속에 고개를 박고 무언가를 찾느라 두리번거려봐야 소용 없는 게, 눈을 감고 있잖아. 눈을 감고 대체 뭘 알아볼 수 있겠어.



A Beautiful Mess, Jason Mr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