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래끼

2008. 7. 16.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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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다래끼가 언제였더라. 그때는 발갛게 부어오르고 딱딱히 굳어가는 게 손에 만져질 때 부리나케 약국으로 달려갔더랬다. 병원에 가시는 게 맞긴 한데, 항생제만 먹어줘도 가라앉을 것 같네요. 곪지는 않을 거에요, 하며 준 몇 개의 약들. 그 중에는 정체모를 한방 가루약도 끼어 있었다. 다행히도 약사가 장담한 바와 같이 곪아서 째어내는 일은 생기지 않았고, 아, 역시 병(이라기엔 민망)은 키우는 게 아니구나 깨달았지. 그래도 여전히 병원은 낯선 곳이고 어지간히 아파서는 갈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어제 새벽에 두들겨 깨워져서 식탁 앞에 앉았는데 오른쪽 눈꺼풀이 뻑뻑한 게 분명 뭔가 자리잡을 낌새가 보여서 엄마에게 일차 진단, 아빠에게 이차 진단을 받고 병원에 가리라 마음을 먹었다. 약국에서도 잘 해결해 줬지만 굳이 병원에 가겠다 맘먹은 건 절대로 다달이 뭉텅뭉텅 떼어가는 의료보험료 때문이 아니다. 지난번에 약국에 달려갔던 건 혹시라도 병원가면 째자 그럴까봐 그랬던 거고 그때 그만큼 진행이 되도 굳이 째어내지 않고 해결 되었으니 지난 번보다 훨씬 가벼운 증상인 지금은 피를 볼 일이 없을 거라 확신했기 때문인 거지.

최근 눈이 수난시대라 모기도 눈꺼풀을 뜯어대고 다래끼도 스물스물 올라오고 그런다. 그러고 보면 나는 눈에 겁이 많은데. 하다못해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서 친분이 있는 판매원이 아이라인을 그리고 마스카라를 바르며 깔깔 웃었을 정도니까. 고객님, 괜찮아요, 눈이 완전 공포에 질렸네. 바들바들 다 떠시고. 난들 그러고 싶어 그러나요. 겁이 나는 걸 어떡해.

돌아보면 이건 다 엄마 때문이다. 어렸을 땐 눈에 다래끼가 나면 병원에 가서 항생제를 타먹는 게 아니라 충분히 곪을 때까지 뒀다가 엄마가 직접 짜줬거든. 다래끼에 엄마 손이 닿을 쯤 느끼게 되는 숨이 턱턱 막히는 공포. 누가 눈에 손을 대면 반사적으로 그때 그 공포를 떠올리는 걸 수도 있다. 아님 말구. 그치만 나중에, 고등학교 다닐 때던가 대학 때던가 다래끼가 생기면 항생제를 먹으면 쉬이 가라앉는다는 걸 어쩌다 알게 된 후 가슴 깊은 곳에서 샘솟던 그 원망이라니. 어째 다 말로 할 수가 없는 그 원망의 마음.

오늘 아침 밥을 먹고 아무 생각없이 약봉지를 뜯었는데 약들이 참 색색깔 형광빛에 예쁘게도 생겼다. 겨우 다래끼 하나에 삼시 세번 네 알씩 하루에 열두 알. 그래도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안 째는 게 어디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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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y 2008.07.17 12:1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댓글이 없으면 이제 글이 안 올라올 거라는 압박.

    에 못 이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