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맥큐언, 체실 비치에서

2008. 10. 10. 03:51 Tags » 소설, 이언 매큐언, , 체실 비치에서

체실 비치에서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이언 매큐언 (문학동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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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순간들이 있다. 아, 이건 분기점이다. 지금, 여기서의 내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드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하는. 그리고 그 순간들은 평소보다 훨씬 느리게 지나간다. 누군가가 일부러 느리게 재생한 필름처럼, 또박또박 느리게. 그래서 나중에 그 기억을 떠올릴 때도 재생 속도는 생생하게 같다. 가끔은 더욱 느려지기도 하고. 이언 매큐언의 <체실 비치에서>는 그 순간을 가운데 놓고 과거와 미래를 속도감 있게 펼쳐놓는다. 과거는 분수령을 향한 긴장과 불안을 수반하고 미래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향한 고통과 후회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이 소설은 중편이라기에도 분량이 살짝 모자라지만 캐릭터나 사건의 성격 등이 많은 설명을 요구하는 타입이 아니어서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구성은 탄탄한 편이다. 그래도 역시 성급한 젊음이나 맹한 결벽증 따위로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이야기 자체에서 매력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러한 시대에, 그러한 모습으로, 하필이면 그 둘이 만나 그렇게 되었으나, 그게 보편적인 아쉬움과 연민을 끌어올리는 힘을 갖고 있지는 않고. 오히려 책을 덮고 나면 한 편의 긴 농담을 읽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된 어리석은 젊음에 대한 조소와 같은.
그러니까 딱히 유쾌한 기분은 아니라는 것.  


코맥 맥카시, 로드 The Road

2008. 10. 9. 06:47 Tags » The Road, 로드, 소설, , 코맥 맥카시

로드(THE ROAD)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코맥 매카시 (문학동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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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위엔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 한참을 걸은 뒤에 돌아봐도 얼마나 왔는지, 정말로 전진하고 있긴 한건지 알 수가 없다. 가도 가도 끝없는 길 위에 재가 가득 쌓여 그 길의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지. 발을 멈추는 그 순간 삶 역시 멈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걷고, 먹고, 다시 걷고.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로. 가끔 먹을 것을 찾기 위해 허물어져가는 건물의 잔해를 수색하는 장면은 로빈슨 크루소를 떠올리게 한다. 로빈슨 크루소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적절하게 난파한 배들이 해변에 밀려와주면, 그는 구석구석 잘 뒤져서 말린 곡식이나 육포 같은 각종 저장식품들, 낟알들을 찾아내 보리 한톨 빠지지 않게 목록을 작성하고 창고에 저장한 후 그 낟알 중 일부는 싹을 틔워 미래를 대비했다. 그러나 그것은 머무는 자의 삶이다. 어디로든 떠나지 않아도 되는,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그 다음 날도 이곳에 머물 것이 약속된 사람의 삶에는 계획이 필요하고, 생산도 가능하지만 길 위에 선 아버지와 아들은 기껏 찾아낸 꽃씨를 주머니에 넣고서도 이걸 어쩌겠다는 것인가 한숨짓고 만다. 오늘 밤 어디서 비를 피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삶. 그래도 그들은 종종 대화한다. 대부분 짧고 단촐하며 반복적이긴 해도 그 어떤 경구나 격언보다도 많은 걸 담고 있는 대화. 길 위의 고단한 삶 가운데 위안이 되고 의미가 있는 것은 그들의 대화 뿐이므로 그 대화는 줄곧 이어져야만 한다. 그래서 소년은 약속한다. "아빠하고 매일 이야기를 할게요. 그리고 잊지 않을게요. 무슨 일이 있어도."

로드는 단점의 거의 보이지 않는 소설이다.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다. 고단하고 험난한 장면이 줄곧 마음을 괴롭게 하지만 작가는 쉬어가는 지점을 잊지 않는다. 온통 절망 뿐이요, 미래도 없는 것 같지만 중간에 가끔씩 불편한 마음을 내려놓을 때면 쉽사리 희망이 달콤한 향내를 풍기며 가늘게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곤 한다. 사람이란, 얼마나 쉽게 기대하고 희망하며 절망하는지. 이야기가 나락으로 치달을 수록 찰나의 변화는 극적이기 마련이다. 간만에 베스트셀러의 미덕을 찾아낸 터라 흡족한 마음이지만, 온갖 너저분한 수사를 가득 담고 있는 띠지-베스트셀러의 증거-를 보고서도 이 책을 서점에서 집어들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감히 <성서>에 비견되는 소설!" 이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인지. 어쩌란 말인지. 어휴. 그럼에도 불구하고, 띠지의 절망을 이겨내고 책을 집어들기만 한다면, 어지간해선 이 책을 고른 걸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1. BlogIcon hey 2008.10.10 02:1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 정말 사기 싫은 띠지네요. -.-
    하지만 난 그걸 이겨내고 총/균/쇠를 샀다구.

[시] 깨꽃, 마종기 / A Beautiful Mess, Jason Mraz

2008. 7. 15. 20:15 Tags » Jason Mraz, 깨꽃, 마종기, 불면, , 음악


헤어져 살던 깨알들이 땅에 묻혀 자면서 향긋한 깻잎을 만들어내고, 많은 깻잎 속에 언제 작고 예쁜 흰 깨꽃을 안개같이 뽀얗게 피워놓고, 그 깨꽃 다 보기도 전에 녹녹한 깨알을 한 움큼씩 만들어 달아주는 땅이여. 깨씨가 무슨 흥정을 했기에 당신은 이렇게 농밀하고 풍성한 몸을 주는가.

그런가 하면, 흐려지는 내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꽃씨가, 어떻게 이 뒤뜰에 눈빛 환해지는 붉은 꽃, 보라색 꽃의 연하고 가는 피부를 만드는가. 땅의 염료 공장은 어디쯤에 있고 봉제 공장은 어디쯤에 있고 향료 공장은 또 어디쯤에 있기에, 흰 바탕에 분홍 띠 엷게 두른 이 작은 꽃이 피어 여기서 웃고 있는가.

나이 들수록 남들이 다 당연하다며 지나치는 일들이 내게는 점점 더 당연하지 않게 보이는 것은 내 분별력이 흐려져가기 때문인가. 아무려나, 흐려져가는 분별력 위에 선 신비한 땅이여, 우리가 언제 당신 옆에 가면 그때부터는 당신의 알뜰한 솜씨를 다 알아볼 수 있겠는가. 흙이 꽃이 되고, 흙이 깨가 되는 그 흥겨운 요술을 매일 보며 즐길 수 있겠는가.

늘어만 가던 궁금증이 하나씩 해결되는 깨알 같은 눈뜸이여, 나는 오늘도 깨꽃 앞에 앉아 아른거리는 그 말을 기다리느니, 어느 날 내 몸도 깨꽃이 되면 당신은 내 말과 글이 드디어 향기를 가지게 된 것을 알 수 있겠는가. 부르고 싶었던 노래를 찾아 헤매던 날들은 지나고 드디어 신선한 목숨이 된 나를 알아볼 수 있겠는가.


깨꽃 / 마종기,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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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도, 당연하지 않은 것의 경계도 희미해져만 가고 그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서서히 색을 잃고 빛바래며 내가 알던 향기조차 더 이상 충분히 달콤하지 않은, 불투명하고 어두운 밤들. 나는 무슨 꽃이 되어야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을까.

무얼 원하는지 잘 모른다는 건 내 마음속에 자리잡은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 선택을 미루고, 행동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아무리 작정하고 내 머릿속에 고개를 박고 무언가를 찾느라 두리번거려봐야 소용 없는 게, 눈을 감고 있잖아. 눈을 감고 대체 뭘 알아볼 수 있겠어.



A Beautiful Mess, Jason Mraz



 

[책] 영원한 이방인, 이창래

2008. 7. 15. 02:50 Tags » 언어, 영원한 이방인, 이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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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가에게든 몇 번이고 이야기한 적이 있을 책 중의 한 권. 아침에 눈을 떠서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 몫의 잡생각을 뒤적대다가 건져낸 애매한 욕구 하나. 영원한 이방인에 관해 말해 보기.

그동안 영원한 이방인에 관해 써보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했던 건 이 책이 불러 일으키는 심상-기억-느낌을 표현한 단어들을 문장으로 엮는 데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해도 문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거다. 마치 이 책을 읽는 내내 느껴야 하는 강제적인 거리감, 그러니까 주인공이 대상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동원하는 모든 수사에도 불구하고 전혀 줄어들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그와 사물-사람-가족-사회-언어와의 거리처럼, 내가 떠올리는 모든 단어들은 그 사이가 한참 멀어서 엮어봐야 너무 성긴 그물망인양 영 쓸모 없어지고 말았기 때문에.

이야기 하려고 하면 할수록, 가까워지려고 하면 할수록 도리어 그와 나 사이의 거리와 차이만 확인하게 되는 건 정말이지 겪어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 중 하나. 주인공 헨리는 줄곧 그래서 그가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질감에 대해 설명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이방인의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쓸모 없는 몸짓만 되풀이하고 만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것은 그리 타고났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피부색이 달라서거나, 그가 다른 문화권의 가정에서 자라났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다른 이들과 제대로 소통할 수 없었던 건 분명히 "언어를 엉터리로 말하는 사람" 이었기 때문이었던 게 맞지만, 그건 언어구사능력과 하등 관계가 있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다만, 그 언어에 얼마만큼의 진실을 담을 줄 아는가 하는 문제였겠지.

사람의 말에는 언제나 어느 만큼의 거짓과 어느 만큼의 진실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말의 진실성이라는 건 확신할 수 없는 진실의 무게가 거짓을 충분히 덮은 다음에야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이고, 우리가 알거나 알지 못하는 거짓이 언제나 그 밑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말'은 언제든 쉽사리 공허해질 가능성을 가득 품고 있는 거고.

헨리도 알고 있었다. 그건 헨리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 혹은 아줌마와의 소통, 그들의 문화와 그들의 방식에 거리를 두면서 생겨난 습관으로부터 비롯된 무의식적인 거리두기에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고, 혹은 언제나 제스처를 취하다가 그 제스처가 방향을 잃은 채 단단한 껍질처럼 온몸을 에워싸버리고 말았을 수도 있는 거고. 어떤 식으로든 헨리는 아주 적은 양의 진실을 희미하고 티나지 않게 섞어넣은 언어만을 구사하게 되었으니까.

헨리의 방식은 대부분의 경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조금은 불편한 게 없지 않겠지만, 그냥 저냥 지낼만은 할 것이다. 헨리의 방식이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는 건 누군가가 그를 바라보고,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고, 그의 말에 질문을 던지게 될 때 부터일 것이다. 사랑하는 그녀는 알아차릴 수 밖에 없겠지. 그의 말이 왜 엉터리인지, 그가 던지는 말이 그녀에게 전하는 진실의 무게가 얼마만큼인지. 왜 그는 언제나 희미하게만 존재하는지. 그래서 그녀는 말하게 된다. "언어를 엉터리로 말하는 사람".

물론 헨리가 집착하는, 줄곧 풀려고 애쓰는 퍼즐은 진실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그는 언제나 뜻을 전달하는 매체로서의 언어 뿐 아니라 사회적-지적 지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서의 언어에 대해서도 불편함을 느낀다. 내이티브 스피커가 아니기 때문에. 이민자들의 언어, 그 역시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지속적으로 인식해야 하는 타인과의 거리-차이를 느끼게 하기 때문에 진실을 담는 언어의 문제와 그 언어를 구사할 때의 이물감-불편함이 통째로 뒤섞여 결국 한 편의 예쁘게 잘 꼬인 인생을 창출해 내었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그런 것에 관한 책.

주인공 헨리가 언어를 표현하는 방식과 그 언어에 무엇을 담아내야 하는가를 두고 내내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것과 달리 작가 이창래는 좋은 언어-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하며(물론 이 언어가 영어인가 한국어인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가 가진 좋은 언어에 충분한 뜻을 담을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언제나 주목하고 있는, 몇 안되는 작가 중 한 명이기도 하고. 아, 좋은 문장을 만들어낼 줄도 안다. 깔끔하게 잘 정제된, 의미로 가득 찬 문장. 다음에 이 작가의 책을 읽을 땐 영어로 읽어볼까 싶기도 하지만, 가끔 짓궂게 이 작가가 구사하는 한국어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여전히 아름다울까. 아마도 그럴 거다. 정말로 중요한 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하는 점이니까.




[책] 여행할 권리, 김연수

2008. 7. 10. 04:09 Tags » 기행문, 김연수, 문학, 여행, 여행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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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가 줄곧 되묻고 답하는 건 문학의 국경은 어디에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그 국경을 넘어가 여행을 떠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책의 첫머리에 국경이 없는, 어떻게 해도 배신자가 아닌 채 국경을 넘어갈 수가 없는 현실을 지적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선에서 어디엔가 존재할 지 모르는, 그러나 어떻게 넘어야 할지 모를 국경을 탐색하고 있으며, 이어 과연 국경의 안과 밖이 어디인지 고심한다. 바깥이 없다면 넘어가야 할 국경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므로. 또한 국경을 넘으며 배신할 것도, 잃을 것도 없을 거니까.

사실 김연수의 이 질문들을 보면서 국내문학의 흐름을 놓친 지가 너무 오래되어 우리 문학의 국경이 어디쯤 존재하는지, 다들 무엇을 넘어 어디로 향하는지 전혀 인지하고 있는 바가 없다는 게 제법 아쉽게 느껴지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문제의식의 뿌리가 어디쯤 묻혀 있는지 잘 감이 오지 않는달까, 혹은 왜 이리 답이 뻔한 문제를 구태여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다닐 핑계로 삼은 걸까 싶은 사소한 불만도 얹어서. 그치만 김연수의 글맛이 제법이라, 그의 질문과 대답이 다소 불만족스럽다 하더라도 읽기를 그만둘 마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만두긴 커녕, 중간에 쉽사리 책을 놓을 만한 마음이 들지 않는걸. 어떤 걸 써도 이 사람은 쉽고 분명하며 재미나게, 젠체하지 않고 맛깔스럽게, 쫀득쫀득하게 잘 쓴다.

결국 중국으로, 미국으로, 일본으로, 독일로 떠돌던 김연수는 뭔가를 찾아 영구 운동하지 못하는 문학, 영구 망명을 꿈꾸지 않는 문학은 좋은 문학이 될 수 없다, 고 선언하며 그 어떤 경계에도 갇히지 않는 문학(그 경계선 주변에서 경계선을 조금씩 온몸으로 밀어대는 자의 문학)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답이다. 누가 들어도 언제든 어떤 부분에선 조금쯤 수긍할 수 있는,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가치지향적인 답변. 이런 답변을 자신있게 써서 남들에게 말할 수 있는 작가라면 이상처럼 영영 자신의 꿈을 잃어버린 채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른 채 비칠대며 암흑 속에서 희망을 잃진 않겠지. 그러므로 나는 내내 지켜볼 것이다. 김연수의 다음 책이 향하는 곳을. 앞으로 그가 원하고 찾던 그런 문학을 향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1. BlogIcon hey 2008.07.11 01:5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앗, 새 글이다.

  2. acala 2008.07.11 03:2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심야 납량특집을 보고 있다가 비명문자를 받으면 누구나 놀랠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