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The Man from Nowhere (2010)

2010.12.05 00:33 Tags » 김복남살인사건의전말, 김새론, 리뷰, 복수는나의것, 아저씨, 악마를 보았다, 영화, 원빈



자꾸 <복수는 나의 것> 이야기를 꺼내게 되서 민망하긴 한데, 이런 종류의, 화면 가득 뻘건 피를 뿌려대는 영화를 보고 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그 영화니까 어쩔 수 없지. <아저씨>는 <복수는 나의 것>이 그랬던 것처럼, 진저리나는, 가학적 폭력에의 거부감을 부채질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동안 <악마를 보았다>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같은 걸 보면서 그런 화면에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래도 근본적인 이유는 <아저씨>에 등장하는 폭력에는 내러티브가 전혀 없기 때문이지 싶은데. 그래서 아무리 잔인해져도, 온몸에 칼을 푹푹 꽂고 손목이나 입을 찢고 눈알이 굴러 다니는 어떤 장면들을 늘어 놓아도 관객의 공포심을 자극할 수 없다. 물론 피는 무조건 싫어요 타입은 제외. 

이 영화의 경우 문제는 폭력에만 내러티브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 이야기나 캐릭터의 구조도 총체적 난국이라 차라리 피 뿌리는 장면은 눈 뜨고 봐도, 태식이나 소미가 대사를 치기 시작하면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싶어진다. 영화를 보던 관객이 빠른 액션과 진행에 잠깐 넋 놓고 그러러니 넘어가는 건 괜찮다 쳐도, 만드는 사람들마저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리면 곤란하잖아. 부러 그랬다면 그건 매우 영리한 트릭이지만 어딜 봐도 그렇게 똑똑한 영화는 아닌지라 도저히 맘편히 보고 있을 수가 없다. 특히 대책도 없이 이미 떠난 차를 죽어라 쫓아 달려가다 놓치는 장면이 몇 번이고 반복되는 걸 보고 있자니 아 이게 바로 이 영화의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들더라니까. 답도 없고 길도 없지만 뛰던 길이니까 일단 뛰고 보자는 난감무쌍한 상황. 그러니 영화가 그렇게 밑도 끝도 없는 신파로 끝나는 게지. 

+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노파가 라면을 먹는 장면이다. 틀림없이 그건 다 식은 라면이었을 거야. 뜨거운 라면을 그렇게 잔뜩 입에 넣고 후루룩 빠르게 먹을 수 있을 리가 없다니까. 한 마디 덧붙이자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캐릭터도 그 노파다. 금방이라도 입이 새빨갛게 양옆으로 쭉 찢어진 채 뒤돌아 볼 것 같은 홍콩할매귀신의 이미지. 



  1. BlogIcon 2012.09.13 11:0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그러게 왜 억지로 다 보셨어요 ㅠㅠ

최근 1-2년 새 선호하는 한국배우들 1

2010.11.06 11:45 Tags » 강지환, 남상미, 리뷰, 문정혁, 박시연, 배우, 윤지혜, 차예련, 커피하우스, 쾌도홍길동, 현빈

작정하고 쉬는 날이니까 이런 잡담도 좀. 


강지환 

누가 뭐래도 목소리가 극복할 수 없는 종류의 핸디캡인 배우. 
아무래도 목소리와 발성 때문에 맡을 수 있는 캐릭터의 한계가 명확해보이지만 나름 현명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 <쾌도 홍길동>의 세상만사 귀찮지만 올바른 분노를 품은 홍길동도 귀여웠고(다만 상대역 이녹의 성유리와의 시너지는 바닥, 커피 하우스의 조수 아가씨와의 시너지도 전혀), 아래 박시연 때문에 보긴 했어도 <커피하우스>의 싸가지 없고 스타일 좋은 이진수도 괜찮았다. 키가 크고 실루엣이 좋아서 뭘 입어도 훌륭하긴 한데 가끔 과한 스타일링이 흠. 뭐니 뭐니해도 역시 핸디캡 때문에 눈이 가는 타입. 웃을 때 얼굴 가득 퍼지는 개구진 느낌도 좋고. 영화보다는 긴 호흡의 드라마가 잘 맞아 보인다. ("7급 공무원"을 꾸역꾸역 봤던 이유도 강지환 때문, 아무리 그래도 "영화는 영화다"는 너무 안땡기고 "방문자"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볼 예정) 연기에 욕심도 있고 야심도 많아 보이는데 과연 어떨지.  


박시연



요즘 제일 예쁘다. 박시연 때문에 너무 착해서 심심했던 <남자 이야기>도 봤고, 정신없이 날뛰는 어린 여자애 싫어 싫어(조수 역할의)하면서도 <커피 하우스>를 봤다. 덜 입어도 예쁘고, 뭘 입어도 예쁘고. 섹시하고 쿨한 척 하다가도 문득 풍겨나는 처연하고 권태로운 느낌이 좋다. 이제는 너무 극적이거나 정형화된 캐릭터들 말고, 좀 더 나이에 맞는, 삼십 대를 건너다보는 이십 대 후반의 일상적 캐릭터를 한번 쯤 보여주었으면 좋겠는데 과하게 포토제닉한 얼굴 때문에 그게 가능할런지 모르겠네. 


그리고..
지친 남상미, 나른한 차예련, 예민한 윤지혜, 찌질한 현빈. 곤궁한 문정혁.
다들 요즘 뭐하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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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앨런 쇼어 2010.11.06 13:21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커피 하우스>를 저희 동네에서 찍어서 강지환씨를 봤었는데 엄청 놀랐어요. 전 그렇게 모델같은 포스를 내뿜을줄은... 기웃거리며 구경했었는데 정말 멋진 분이더군요. 드라마는 못봐서 모르겠지만 영화는 영화다에서도 참 좋았는데 말이죠.

    박시연씨는 마침 얼마전 <다찌마와리>를 봐서 반가운 얼굴이네요. 이쁜 배우죠 !

    • BlogIcon Munity 2010.11.06 13:46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아. 얼굴이 좀 심심하지만 실루엣은 좋은 편이니 모델로도 괜찮지 싶어요. 박시연이 <다찌마와 리>에 나왔을 줄이야. 봐야 할 영화 리스트가 하나 늘었군요.

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 (2009)

2010.10.01 12:03 Tags » 500 Days of Summer, 500일의 썸머, 리뷰, 영화, 조셉 고든 래빗, 주이 드 샤넬


예전의 책 리뷰에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아마도 월플라워), 시대나 세대, 취향과 이슈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문화적 레퍼런스들을 주도적으로 사용하는 건 분명 장단점이 분명한 시도이다. 월플라워는 분명 실패로 끝났고, 반면 500일의 썸머에서 사용한 대량의 꼴라주는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굳이 구분하자면 차용 스타일의 문제. 영화 내에서 뒤죽 박죽 전개되는 시간의 흐름 때문에 이야기들이 종종 거칠게 끊어지거나 이어지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에피소드의 모서리들을둥글게 마모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음악, 책, 영화, 등등이다. 문화적 레퍼런스들이 오히려 허브 역할을 하면서 이야기의 향을 더해 기억하기 쉽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도 장점. 시간이 아무리 뒤섞여있어도 덕분에 덜 헷갈리게 되고. 게다가 500일의 썸머는 레퍼런스를 대량 차용한 영화들이 종종 빠지기 쉬운 '함몰'의 함정을 영리하게도 잘 피해갔다는 점이 더욱 돋보인다. 

나머지 스타일은 특기할 만한 게 없다. 오히려 재기발랄하다 여겨지는 어떤 신들은 이상하게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느껴져서 곰곰 생각해보니 예전 이명세 영화들이 떠오르고.   

내용에 대해선 별 할 말이 없으나, 마치 봄날은 간다가 그랬던 것처럼 일종의 성장 영화인 양 마무리된 점은 아쉬웠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아무리 달콤했건 끔찍했건, 지나간 사랑/연애로부터 배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라. 톰도 썸머도 말하듯 사랑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니까. 톰이 사직을 고하면서 울부짖은 그 대사들은, 모두 맞다. 아무리 비슷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도, 아무리 감정 이입을 해려고 애써봐도 카드의 문구나 영화, 음악 등등에서 내 마음을 그대로 비추는 '정답'을 찾을 순 없는 거. 그걸 지나간 사랑에서 찾을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   

아, 마지막 이별의 순간에 행복을 빌어주는 거. 진심일까? 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잘되길 바란다고, 행복을 빌어줄 순 있지. 내가 행복을 빌어준다고 그 사람이 나쁜 놈이 아닐 리 없고, 그 사람이 나쁜 놈이라고 해서 꼭 접시물에 코박고 죽으라는 심정이 되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넌 나쁜 놈이지만, 그래도 잘 살아라 정도로 타협할 수 있을 거라 생각. 







  1. BlogIcon in사하라 2010.10.01 15:12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허허 이거 엄청 신기한데요?ㅎ
    예전에 이름만 들어서 알고있다가
    오늘 갑자기 생각이나서 다운 받아 봤는데, 이렇게 리뷰를 딱 보게 되네요~ㅎ

  2. BlogIcon Kenny Dalglish 2010.10.02 00:56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500일의 썸머 좋은 영화죠~
    전 남자 입장에서 정말 공감 많이 하면서 봤어요.
    그러면에서 여기서 조셉 고든 래빗이 조금 찌질하게 나오는데 현실의 저도 그러지 않나 싶은 ;;;;
    그런데 뭐 다 비슷하지 않나요 ㅎㅎ
    여기서 주이 드 샤넬도 정말 예쁘게 나오고, Carla bruni랑 Regina spektor 같은 유명한 분들 노래가 나오니까 전 보면서 신기하더라구요 ㅋ

콘스탄트 가드너 The Constant Gardener (2005)

2010.08.30 00:16 Tags » 레이첼 바이즈, 레이프 파인즈, 리뷰, 영화, 존 르 카레, 콘스탄트 가드너




내가 <콘스탄트 가드너>를 한동안 그렇게 좋아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결국 어떠한 흠결도 찾기 힘든 형태의 사랑을 갈구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였고, 둘째, 그토록 섬세하게 흐르는 배우들의 표정과 연기를 단 한 순간의 흔들림도 없이 담아냈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완벽한 마지막 대사와 엔딩크레딧의 음악 때문이었다. 

레이첼 바이즈의 연기는 꽤 진폭이 크지만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몇몇 장면들을 만들어냈으며, 레이프 파인즈의 연기는 매우 고르고 잘게 다져진 가운데 아주 종종 무거운 한숨을 내쉬지 않고서는 쉽게 넘어갈 수 없을만치 무거운 힘을 과시하곤 한다. 거의 모든 대사와 전체 스토리의 구성이 꽤나 좋은 편인데 반해 이야기 전체를 받치는 미스터리의 구조가 살짝 헐거운 것이 제일 눈에 띄는 단점. 음악은 전반적으로 매우 훌륭하다. 


  1. hdachi 2010.08.30 01:5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제일 최근에 본 존 르 카레의 글은 사전만한 셜록 홈즈 주석서에 쓴 추천사였던...

  2. BlogIcon 2012.09.13 11:0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는 이 글 보고 미지님이 영화광이신 줄 알았어요. 죄송해요.

더크 젠틀리 시리즈

2010.08.29 09:17 Tags » 더글라스 아담스, 더크 젠틀리 시리즈,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 사무소, 리뷰, 소설, 영혼의 길고 암울한 티타임,
더크젠틀리의성스러운탐정사무소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SF소설
지은이 더글러스 애덤스 (이덴슬리벨, 2009년)
상세보기

영혼의길고암울한티타임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더글러스 애덤스 (이덴슬리벨, 2010년)
상세보기


알고 산 건 절대 아니고, 올해 초부터 봐야지 했던 책인데 이래저래하다보니 여기까지 들고 와서 읽어 보니 주구장창 나오는 동네가 내가 사는 동네다. 꾸역꾸역 막히는 펜톤빌 로드라든가, 차고 넘치는 부동산중개업소에 관한 얘기라든가.. 내가 종종 지나다니는 공원 얘기도 나오고, 그래서 의외의 재미가 있었다는 거 빼곤 그다지 장점이 보이지 않던 책. 시리즈 두 번째, 영혼의 길고 암울한 티타임이라는 책은 번역된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첫번째 시리즈가 실망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읽었는데 이거 원.  비슷한 분위기에 삶에 지친 북구신들이 나오는 작품으로 닐 게이먼의 <신들의 전쟁>이 떠올랐다. 물론 결국 하고자 하는 얘긴 매우 다르지만. 소소한 재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굳이 남들에게 빌려주고 싶은 책은 아니랄까. <마지막 기회>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빌려주고 사기를 권했는지를 생각해보면 더더욱. 


CHANEL NO 19

2010.08.12 11:27 Tags » chanel, NO19, 리뷰, 샤넬, 샤넬넘버나인틴, 향수


남들은 꽃향이라는데 내 몸에선 풀냄새+우디 향이 강하게 난다. 풀냄새는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처음 뿌린 후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향의 느낌이 좋아서 자주 손이 가는 향수. 제일 마지막에 묵직하게 가라앉는 머스크향도 좋다. 아, 사실 난 머스크향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쌔한 느낌의 향수라 겨울에 뿌리면 더 어울리겠지만 겨울에 예민한 날은 금속성의 쇠향을 느낀 적도 있어서 여름 향수로 쓰는 중. 올 여름은 19번으로 났구나. 올 가을엔 꽃향기 가득한 구찌 플로라로 돌아갈까 휴고보스 팜므는 너무 달콤할래나.  

그나저나 억울한데. 자스민 붓꽃 은방울꽃향은 다 어디로 간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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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THREADS SILVER

2010.04.21 20:45 Tags » La Prairie, Life Threads Silver, 리뷰, 오렌지 블러썸, 자스민, 프리지아, 향수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번 내리막길을 탄 마음의 롤러코스터가 그렇게 쉽게 오르막길로 올라서는 게 아니지. 전화도 해보고, 산책도 해보고, 기를 쓰다 결국은 와인을 한 병 땄다. 와인 한 병이면 기분 좋게 취해서 다 잊고 기분 좋게 침대에 들 수 있는 주량이면 좋겠다만 또 유감스럽게도 그 부분은 기대 이상이라 와인 한 병 통째로 다 비우고서도 말짱한 이 마음 어쩌면 좋으리오. 그런 통에 이래저래 웹을 헤매다가 프리지아 향기에 관한 글을 읽자 책꽂이에 얌전히 놓인 향수병에 눈이 간다. 봄봄봄, 봄 향기나는 내 향수. Life Threads Silver, La Prairie, 진한 자스민과 오렌지꽃향이 뒤섞인 내 봄향기. 겨울이면 꽃집마다 내놓는 졸업식을 위한 노란 프리지아 향이 항상 부러웠던 기억이 오래라 꽃향기라면 한동안 한 수 접고 킁킁거렸지만, 어째 마음에 딱 맞는, 정말 봄 같이 싱그러운 꽃향기 담아낸 향수는 만나본 적이 없는 것 같았더랬다. 어쩌면 봄에 내뿜는 꽃향기가 아니라 겨울의, 차가운 공기 아래 서늘한 꽃향기를 원했던 것일지도 모르지.

아무튼 올해 봄은, 살짝 짙게 가라앉는 자스민과 함께하는 중이다. 방 안에 깔린 자스민 꽃향기와 조금 열린 창문 사이로 넘나드는 가벼운 봄 공기가 잘 어울리는 것도 같고, 이제서야 조금 취기가 도나. 그런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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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적인 하루

2010.03.10 22:39 Tags » 다음 시험은 열흘 후, 리뷰, 앨리스 인 원더랜드, 영화, 일상사잡담, 조니 뎁


시험을 끝내고 나오니 다섯 시 이십 분 전. 자전거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부츠에 가서 여러가지 생활용품들을 구입하고, 자라에서 핀 스트라이프 셔츠를 한 장 산 후, 서점에 가서 책을 둘러봤다. 사기로 마음먹은 건 정해져 있었지만 책 구경 쯤이야 뭐. 하루 종일도 할 수 있다우. 7시 서점 문닫는 시간 맞춰서 구입한 책은 스티븐 킹의 다크 타워 4부와 5부. 둘이 합쳐 18 파운드. 좀 두껍긴 하지만서도, 비싸긴 하지. 페이퍼백일 뿐인데. 이안 매큐언의 신작 <Solar>가 나올 예정이다. 3월 17일에 워터스톤즈에 가면 반값에 살 수 있는데다 <The innocent>를 공짜로 준다는데 내가 과연 잊지 않고 들러서 구입할 수 있을래나.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읽은 이안 매큐언의 작품은 <이런 사랑>이었다. 매우 괜찮았고.

7시에 슬슬 서점을 나와서 다시 자전거를 타고 기숙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기숙사 앞에 꽤 큰 쇼핑센터가 있는데, 그곳 극장에 들러볼 생각이었다. 도착하니 일곱 시 이십 분, 마침 막 시작하는 <앨리스 인 원더랜드 3D>가 있어서 바로 표를 구입하고 입장. 놓쳤다면 두 시간을 꼬박 기다렸어야 했을 판이었다. <앨리스 인 원더랜드>는 처음으로 보는 3D 영화다. 에버랜드 어트랙션 우주탐험 같은 거에서 본 거 말고.. 진짜 영화. 학생 할인을 받았는데도 8파운드. 물론 3D 추가요금이 좀 붙긴 했지만서도 7년 전에 비교해서 가격이 꽤나 올랐다. 영화관에 입장하는데 뭔가 어설프게 생긴 선글래스를 하나씩 나눠준다. 친절하게도 선글래스로는 별 쓸모가 없을 거라는 안내도 붙어있고.

영화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이걸 왜 3D로 봐야 하는지 의문인데, 꼭 입체로 형상화되지 않더라도 이 영화의 이미지들은 충분히 기괴하고 아름다운 상상력을 담고 있어서. 뭐 적어도 해가 되진 않을 테니까. 영화에 대해서 특별히 할 말은 없는데.. 아아 조니 뎁. 난 이 사람이 본격적인 로맨스 연기를 하는 게 보고 싶다. 과도한 코미디나 과도한 액션, 과도한 광기의 양념 로맨스 같은 거 말고 그냥 보통의 상황에서의 보통의 로맨스. 나이가 더 들어버리기 전에. <앨리스 인 원더랜드>에서 조니 뎁은 반쯤 미친 해터지만 그 모든 연기가 너무나도 설득력 있어서 마지막 장면에서 네가 날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말할 땐 정말이지 슬픈 기분이 들었다. 무지개빛 화장의 아래 진짜 얼굴을 보여주는 느낌의 연기. 어린 앨리스와의 티 타임 이래로 줄곧 기다려왔고, 이제서 돌아와 드디어 함께 있으니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데 돌아서는 앨리스라니. (앨리스가 돌아서는 순간 슬펐던 건 그게 해터의 마지막 등장 신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집에 오니 아홉 시 사십 분, 탄산이 들어간 사과주(Cider)를 두어 잔 마시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 침대에 들어가 다크 타워 4권을 읽을 예정. 이 어찌 모범적이라 하지 않을 수 있으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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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2010.03.11 15:5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학생이셨군요 그러고보니. 종종 소식 보아서 기뻐요. 소개해주시는 이안 매큐언은 언젠가 꼭 읽고 싶어요. 저번 일요일엔 라미엘님이랑 스타일이 비슷하게(기억상) 예쁜 사람이 저희 조에 들어왔어요. 시험 잘 보세요~

    • BlogIcon Munity 2010.03.15 22:11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이안 매큐언은 좋아하는 작가에요. 줄리언 반즈에게 쏠려 있던 마음을 조금 많이 비집고 들어왔죠. 신작도 기대가 되요.

Michael Connelly

2010.02.07 16:29 Tags » Brass Verdict, Harry Bosch, Michael Connelly, Nine Dragons, 리뷰,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마이클 코널리, 미국식 영웅주의와 미국식 가족주의 중 더욱 밥맛인 것은?, 미키 할러, 소설, , 해리 보쉬, 해리 보쉬 시리즈


도착한 이래로 소설을 두 권 읽었는데 두 권 모두 마이클 코널리의 작품이었다. 처음 건 미키 할러가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이래로 다시 주인공으로 등장한 Brass Verdict, 두번 째 건 해리 보쉬 시리즈인 Nine Dragons. 이제 Scarecrow인가 하는 작품만 보면 출판된 작품은 다 읽는 셈인데, 마지막 건 볼까 말까 좀 고민스럽다. Nine Dragons에서, the man with plan and mission이었던 해리 보쉬가 미국적 가족주의에 흠뻑 빠져 영화 taken의 주인공 마냥 날뛰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아 세상에 가족적인 필립 말로우가 상상이나 되냐구요) 해리 보쉬 내부에서 무언가가 바뀌었다는 설정은 알겠는데, 어두컴컴한 터널안에서 헤매다 오직 한 개의 빛(미션)만을 쫓는 캐릭터였던 해리 보쉬가 딸한테 절절매는 아버지로 변모하는 건 너무 진폭이 커서 받아들이기 힘들고, 게다가 방식이 너무 미국적-할리우드적이어서 실소가 절로 나오고. Brass Verdict 쪽이 조금 나은데, 이전 작의 희생을 바탕으로 happily ever after로 성공적인 삶을 영위했었을 것만 같은 미키 할러가 또다시 인생을 말아먹었다는 게 조금 현실적인 부분이라 설정이 마음에 들었고, 은근슬쩍 엿보이는 소시민적 정의감도 마음에 들고. 아무튼, 해리 보쉬 실망이에요 코널리 아저씨. 이제 어쩔껀가요.

++ 티스토리 글쓰는 중에(10분도 안됐는데) 자꾸 로그인이 풀려서 못써먹겠음. 뭐 방법 없나요.

  1. acala 2010.02.12 03:5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메모장에 쓰고나서 붙여...

    • BlogIcon Munity 2010.02.19 21:02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그러고 보면 확실히 메모장에 글을 써서 올리던 시절이 있기도 했죠. 그치만 티스토리가 천리안은 아니잖아!

마더 Mother (2009)

2009.11.14 17:18 Tags » 김혜자, 리뷰, 마더, 봉준호, 영화


스포일러 주의.


1. <마더>는 배우 김혜자에게 온전히 바쳐진 영화이다. 이건 봉준호 감독이, 배우 김혜자를, 수십년 간 연기자로서 쌓아온 이미지와 캐릭터 뿐 아니라 눈과 코, 입, 손을 비롯한 김혜자의 모든 것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섬세하게 베껴내어 만들어낸 영화라는 의미이다. 감독은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러닝타임 내내, 배우 김혜자를 복제하고 압축하고 과장하고 해체하여 관객 앞에 내놓는다. 온전히, 김혜자만. 그러니까 이 영화의 성공 조건은 과연 (원빈마저도 눈이 사슴 같다는 것 외엔 안중에도 없는) 감독이 배우 김혜자를 경외한 만큼, 관객들도 그러하도록 만들 수 있는가에 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2. <살인의 추억>에서 봉준호 감독이 그려냈던 '강간의 왕국'은 <마더>에서 '원조교제의 온상'으로 거듭났다. 댓가는 쌀. 먹고 사는 문제다.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그러나 체홉의 말처럼, 이미 등장한 총은 발사되어야 하니, 돌 역시 던져질 뿐. 헌데 실상 그 돌에 맞아야 했던 건 누구일까. 바보라 그러는 사람들 가만두지 말라고 배운 그 애일까. 공양미 삼백석도 안되는 쌀에 몸을 팔고선 그저 다 지겹고 싫었던 그 애일까. 먹고 사는 문제를 볼모삼아 그 애를 착취한 그들은 밤새 발 뻗고 잘도 자겠건만.

3. 뭐라더라. 다 잊게 해주는 침 자리를 안다고 하시던가. 슬픈 일도 맺힌 일도 아픈 일도 다 잊게 해주는, 그런 침 자리를 아신다던가. 엄마 손은 약손이라 그 침 자리야말로 그저 엄마만이 줄 수 있는 위안일테지만 엄마 없는 종팔이는 어쩌지. 그러니까 봉준호 감독은 역시 빠져나갈 구멍, 그런 희망을 남겨놓는 사람이 아니다. 아무도 아무것도 잊지 못할 것이다. 다 잊고 다 털고 근심없이 꽃밭으로 노닐러 가려거든 그런 침 자리 따위 아무 소용 없지, 좀 더 센 농약 탄 박카스라면 몰라도.


  1. BlogIcon 2009.11.19 14:1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오랜만의 업데이트시네요. 방금 전에 G메일 들어갔다가 잠깐 녹색불로 비치시더니 언뜻 또 없어지셔서 아쉬웠어요.. 얼마전에 라임꽃차를 마시고 라미엘님이 겨울기차 창밖의 불빛처럼 생각났어요. 그나저나 언제나 라미엘님의 보고들은것은 너무 아립니다, 체인즐링도 이 마더도요..

  2. kazz 2009.11.20 03:0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
    난 원빈의 영화를 기대하고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