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맥 맥카시'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9.19 작별을 고함. (4)
  2. 2008.10.15 코맥 맥카시, 모두 다 예쁜 말들 (2)
  3. 2008.10.09 코맥 맥카시, 로드 The Road (2)

작별을 고함.

2009. 9. 19. 15:32 Tags » 건물 철거, 광화문 교보문고, 국경을 넘어, 버거킹, 소설, 작별인사, 잔해, 코맥 맥카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상보다 일이 일찍 끝났으나 기분도 그렇고 하여 교보문고로 향했다.(안다, 핑계란 거) 교보빌딩 지하에 차를 두고 서점에 들어가니 마침 목이 막 마른데 봐도 봐도 이쁜 데 하나도 없는 멜로디스에선 물을 팔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근처 편의점에서 물만 사서 다시 내려가야지 하고 정문으로 나갔는데 쏟아지는 햇빛이 따갑다고 잔뜩 찡그린 눈 앞에 적어도 십 년 쯤 교보문고 앞에서 다소곳하니 자리를 지켜왔던 다정한 빨간색 간판의 버거킹 건물이 홀랑 배를 까놓고 있다. 멀거니 보다가 가방을 뒤졌으나 오늘따라 카메라도 없고.. 결국 휴대폰으로 찍었지만 이 사진으론 당시의 황망하고 황량한 심정이 전해질 수 있을 리가 없겠지. 그렇다고 내 문장을 믿을 수도 없는 노릇.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어린애가 마구 찢어놓은 종이인형집 같은 모양새의 건물을 또 한참 바라보다 물 사는 것도 잊고 다시 교보문고로 내려가서 코맥 맥카시의 <국경을 넘어>를 집어들었다. 황망하고 황량한 심사에는 코맥 맥카시에 견줄 작가가 없을테지. 이 책은 꼭 아껴두었다가 다음 주, 야구 시즌이 끝나고 나면 읽을 심산이다.

그리하여 안녕, 버거킹. 하릴없는 오후 책 사들고 나와 그 곳 창가에서 보냈던 시간들에도 안녕, 인사를.  



'일상사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2009.10.04
스킨에 손댄 김에.  (0) 2009.10.03
작별을 고함.  (4) 2009.09.19
가을이  (1) 2009.06.22
어느 추운 겨울날 집에 가다가  (4) 2009.01.06
모든 것이 샤방샤방  (6) 2008.12.20
  1. 2009.09.20 12:2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Munity 2009.09.21 02:37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난 거기 창가에 가끔 앉아 있었어.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보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건물 전면이 창이라서 볕도 나름 따스하게 들고 좋았는데.

  2. BlogIcon 낙오자 2009.09.21 01:22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부산 본가에 들를 때 마다 내게 익숙했던 거리가 변합니다.
    때로는 미묘하게, 때로는 파격적으로.

    즐겨찾던 술집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는 것이 아주 아쉽고도 불편하더군요.

    • BlogIcon Munity 2009.09.21 02:35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대학 초년생 때 홈커밍데이에 찾아오던 선배들이 옛날엔 학교 앞 저기까지가 다 딸기밭이었어 얘기하는 걸 무덤덤하게 들어넘겼던 기억이 있는데, 요즈음 학교 앞의 선뜻하게 변해버린 거리를 스쳐 지나가면서 종종 딸기밭을 떠올리곤 해요.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 거리풍경보다야 딸기밭이 더 낫나 싶기도 하고.

코맥 맥카시, 모두 다 예쁜 말들

2008. 10. 15. 01:30 Tags » 모두 다 예쁜 말들, 소설, , 코맥 맥카시

모두예쁜 말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코맥 매카시 (민음사, 2008년)
상세보기

고백하건대 난 저 말이 horse가 아니라 word인 줄로만 알았다. 전혀 의심의 여지 없이. 그래서 책을 받아들고 표지에 그려진 선인장과 카우보이 모자와 말 그림을 보며 황망해 하고야 말았지. 요는, 작품에 대한 사전정보 따윈 전혀 보지 않고 작가의 이름만 믿고 책을 골랐다는 것이다. 겨우 한 권 읽고 그렇게 신뢰해도 되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코맥 맥카시의 경우엔 웬만한 책이면 평균 이상의, 혹은 그를 상회하는 가치를 충분히 갖고 있을 것이라 믿었고 이제 이런 부분에 대해선 내 판단을 신뢰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붙어가고 있어 기쁠 뿐이다. 그러니까, 이제야.

카우보이 얘기라곤 <브로크백 마운틴>밖에 읽어본 것이 없고, 범주를 넓게 쳐서 서부극에, 멕시코가 무대인 영화까지 놓고 봐도 본 거라곤 <데스페라도> 하나다. 아, <마스크 오브 조로>를 빼먹었나. 하하. 그래도 전혀 낯선 느낌이 없는 독서인 건 이 책의 큰 줄기가 성장소설에 가깝기 때문이다. 말과 소, 땅 같은 걸 인생의 중심에 조금 더 가깝게 놓고 자라나는 소년(마지막에 가서야 알았지만 얘가 겨우 열 여섯이다)이 비뚫게 짜인 격자무늬처럼 이리저리 걸쳐지는 사람들과의 관계, 교류와 사건 속에서 자신의 진짜 중심을 찾아가는 이야기. 소설이 진행되는 중 큰 고비마다 펼쳐지는 작은 에피소드들의 짜임도 좋고 큰 줄거리와의 붙임성도 좋아서 제대로 된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괜찮은 성장소설에서 언제나 그렇듯 주인공이 잃어 온 수많은 것들에 비해 '성장' 그 자체는 너무 보잘것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 모든 것을 잃고서도 여전히 빈 손으로 어디 있는지 모를 내 나라를 찾아 나서야만 하니까. 그저 조금 더 외로워진 채로.


  1. syz 2008.10.15 23:2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나는 이 글을 어제 보고 오늘 출근하기 전에 또 보는데 이제서야 word가 아닌 것을 깨닫고 황망해하고 있다. 아... -_-
    >> 그러나 이런 종류의 괜찮은 성장소설에서 언제나 그렇듯이 주인공이 잃어 온 수많은 것들에 비해 성장 그 자체는 너무 보잘것 없어 보이는게 사실이다.
    정말이지 그렇다!

코맥 맥카시, 로드 The Road

2008. 10. 9. 06:47 Tags » The Road, 로드, 소설, , 코맥 맥카시

로드(THE ROAD)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코맥 매카시 (문학동네, 2008년)
상세보기

재 위엔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 한참을 걸은 뒤에 돌아봐도 얼마나 왔는지, 정말로 전진하고 있긴 한건지 알 수가 없다. 가도 가도 끝없는 길 위에 재가 가득 쌓여 그 길의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지. 발을 멈추는 그 순간 삶 역시 멈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걷고, 먹고, 다시 걷고.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로. 가끔 먹을 것을 찾기 위해 허물어져가는 건물의 잔해를 수색하는 장면은 로빈슨 크루소를 떠올리게 한다. 로빈슨 크루소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적절하게 난파한 배들이 해변에 밀려와주면, 그는 구석구석 잘 뒤져서 말린 곡식이나 육포 같은 각종 저장식품들, 낟알들을 찾아내 보리 한톨 빠지지 않게 목록을 작성하고 창고에 저장한 후 그 낟알 중 일부는 싹을 틔워 미래를 대비했다. 그러나 그것은 머무는 자의 삶이다. 어디로든 떠나지 않아도 되는,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그 다음 날도 이곳에 머물 것이 약속된 사람의 삶에는 계획이 필요하고, 생산도 가능하지만 길 위에 선 아버지와 아들은 기껏 찾아낸 꽃씨를 주머니에 넣고서도 이걸 어쩌겠다는 것인가 한숨짓고 만다. 오늘 밤 어디서 비를 피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삶. 그래도 그들은 종종 대화한다. 대부분 짧고 단촐하며 반복적이긴 해도 그 어떤 경구나 격언보다도 많은 걸 담고 있는 대화. 길 위의 고단한 삶 가운데 위안이 되고 의미가 있는 것은 그들의 대화 뿐이므로 그 대화는 줄곧 이어져야만 한다. 그래서 소년은 약속한다. "아빠하고 매일 이야기를 할게요. 그리고 잊지 않을게요. 무슨 일이 있어도."

로드는 단점의 거의 보이지 않는 소설이다.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다. 고단하고 험난한 장면이 줄곧 마음을 괴롭게 하지만 작가는 쉬어가는 지점을 잊지 않는다. 온통 절망 뿐이요, 미래도 없는 것 같지만 중간에 가끔씩 불편한 마음을 내려놓을 때면 쉽사리 희망이 달콤한 향내를 풍기며 가늘게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곤 한다. 사람이란, 얼마나 쉽게 기대하고 희망하며 절망하는지. 이야기가 나락으로 치달을 수록 찰나의 변화는 극적이기 마련이다. 간만에 베스트셀러의 미덕을 찾아낸 터라 흡족한 마음이지만, 온갖 너저분한 수사를 가득 담고 있는 띠지-베스트셀러의 증거-를 보고서도 이 책을 서점에서 집어들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감히 <성서>에 비견되는 소설!" 이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인지. 어쩌란 말인지. 어휴. 그럼에도 불구하고, 띠지의 절망을 이겨내고 책을 집어들기만 한다면, 어지간해선 이 책을 고른 걸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1. BlogIcon hey 2008.10.10 02:1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 정말 사기 싫은 띠지네요. -.-
    하지만 난 그걸 이겨내고 총/균/쇠를 샀다구.